이미지 크게보기 재능기부 단체인 ‘끼친’(끼를 나누는 친구들) 회원들이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 강당에서 저소득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학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끼친 제공

“이걸 넣고 흔들면 바로 탱탱볼이 되는 거야.”

지난 11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A 초등학교 강당. ‘놀토’(학교 수업이 없는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강당에는 20여 명의 학생들이 이곳저곳 흩어져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실험용기 안에 든 물질들을 바라보는 학생도 있었고, 벌써 신이 나서 강당 안을 뱅뱅 돌아다니는 학생도 있었다. 즐거워하는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과학실험을 진행하는 20∼30대 ‘끼친’ 회원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끼를 나누는 친구들’의 준말인 끼친은 재능기부를 위해 모인 젊은이들로 구성된 단체다. 현재 다양한 재능을 지닌 회원 800명이 넘게 모여 팀별로 활동하고 있다. 끼친 회원들은 저소득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교과 과정에서 배우기 어려운 실험이나 방과 후 활동 등을 주로 지도한다.

이날 A 초등학교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도 학원에 갈 형편이 안 되거나 주말에 부모님이 집을 비워 돌봐주지 못하는 아이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친절하게 1대 1로 수업을 진행하며 가르쳐 주는 회원들 때문에 강당에 모인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어두운 그늘을 찾기 어려웠다.

끼친 회원 조창진(28) 씨는 “처음에는 아이들과 친하지도 않고 지도 경험도 없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해야 학습 내용을 아이들에게 잘 전달해줄 수 있는지 알게 되면서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능 기부 회원들은 유치원 교사, 사진작가, 화가 등 다양한 직업군을 갖고 있다. 평균 10차례 정도 이어지는 수업 과정에는 과학, 예술, 체육 등 회원 각자의 재능을 살린 수업들이 하나씩 편성돼 있다.

이날 수업은 과학수업인 탓에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회원들도 책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탱탱볼 만드는 방법과 원리 등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온 상태였다. 틈틈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설명하는 등 두 시간 남짓 진행된 수업은 조금도 허비하는 시간 없이 알차게 진행됐다.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은 아쉬워하며 자리를 떠났다.

끼친 회원들의 재능 기부로 진행되는 수업에 대한 아이들의 평가는 ‘A+’다. 수업에 참여한 한 저학년 초등학생은 “직접 실험하고 만들어보기 때문에 수업이 신기하고 재밌다”며 “매일매일 방과 후에 선생님(끼친 회원들)과 함께 수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도 “주말에 집에 있으면 할 일이 없어 심심한데 친구들과도 놀면서 수업을 들어 신난다”며 “나중에 크면 나도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고 으쓱거리며 말했다.

학부모들의 반응도 좋다. 학부모 김정민(여·40) 씨는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를 주말에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사실 놀토가 부담이 됐는데 재능 기부를 하는 젊은이들 덕에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이 줄어 고맙다”며 “도움을 받은 만큼 나중에 나도 내 능력 범위 내에서 다른 사람을 도와줄 일이 있을 때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끼친 회원들의 모토는 ‘재능 기부가 재능 기부를 낳아 결국 전체 공동체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영광 대표는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함께 모여 활동하면 공동체를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며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체를 위해 조금씩 자신의 것을 나누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근 민간 부문에서의 기부 등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재능 기부는 큰 부담 없이 공동체 의식을 되살려주는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상당수 봉사 활동이 일회성, 단발성으로 끝나는데 반해 재능 기부는 ‘기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한 공동체 운동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 등에서도 재능 기부 콘서트, 재능 기부 축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주민들의 재능 기부를 이끌어내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조원희 변호사는 “재능과 지식을 소외계층에 전달하는 재능기부는 손쉽게 재능기부 인재를 또다시 배출해낼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물질적 기부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다”며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되살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