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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숙명여대 법대 교수·법학

다소 생소하기도 하고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잊어질 권리’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몇몇 국가에서 잊어질 권리에 관한 소송이 현재 진행되고 있고, 우리 국회에도 이에 관한 법안이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남이 잊으라고 명령한다 해서 잊어지는 게 아니며, 내가 잊고 싶다고 해서 쉽게 잊어지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잊어질 권리’란 말이 무슨 말인지 예전에는 없던 말이다. 인터넷 정보와 관련된 ‘잊어질 권리’란, 자신이 원하지 않은 정보가 포털 사이트, 검색 엔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되는 것을 개인인 정보 주체가 막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런데 ‘권리’라고 하기 위해서는 법의 규율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예컨대 명예훼손적 불법정보와 같이 불법정보인 경우에는 이미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 법에 보장돼 있고 대법원 판례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권리라고 할 수 있으나, 불법정보가 아닌 적법한 정보로서 자신이 원하지 않은 정보의 경우,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지 여부는 아직 법이 정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범위를 어디까지로 확대할 것인지의 문제가 지금 논의되는 잊어질 권리의 문제다.

온라인상 수집·처리 목적을 다한 정보라든지 합법적인 보유 근거를 상실한 정보가 있는 경우 정보처리자에게 삭제를 요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언뜻 보면 당연해 보인다. 더구나 한번 노출된 개인 정보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확대 재생산됨으로써 보는 막대한 피해를 생각하면 응당 잊어질 권리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반면, 삭제하기 위한 기술적인 어려움과 표현의 자유, 알권리 등과의 상충 문제를 생각하면 잊어질 권리를 쉽게 인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 권리를 법률로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은 쉽지 않을 듯하다.

사람은 누구나 잊고 싶고, 부끄러워 감추고 싶고, 밝히기 꺼려지는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제17조에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제18조에서 통신의 비밀을 보장하고 있다. 형법도 이를 실현하기 위해 비밀침해죄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 외에 개인정보보호법 제37조에서 정보 주체가 개인정보처리자에게 자신의 개인정보처리 정지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2에서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피해자의 정보삭제 요청권 등을 인정하고 있다.

적당히 망각하는 인간의 두뇌가 아니라, 기계의 힘을 빌려 시간적·공간적으로 자유자재로 기억을 저장하고 언제라도 꺼내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시대에는 과거에 비해 정보의 활용이 무한히 편리해진 반면, 그 부작용 또한 심대하다. 그래서 정보의 생산은 쉽지만 삭제와 파기가 쉽지 않은 인터넷 환경에서 불가피하게 잊어질 권리 개념이 제기되고 그 폐해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사회적 합의를 이뤄 법제화 여부를 결정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법안은 정보통신망법과 저작권법의 한두 조항을 개정해 잊어질 권리를 보호하고자 한 것인데, 잊어질 권리의 개념부터가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자신의 저작물만 삭제토록 하고 있어 보호가 불충분하고 너무 서두른 감이 없지 않다.

잊어질 권리를 섣불리 법으로 보호한다면, 언론의 고유 기능과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될 수 있고, 때로 역사기록까지 중단될 수도 있으며, 광범한 인터넷 전체에서 개인의 일부 정보만 삭제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대단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삭제한다고 해도 인터넷 어딘가에 복제돼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커서 잊어질 권리 보호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 또한 법 집행의 인력과 비용 역시 적지 않은 등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생활의 비밀에 대한 권리와 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도를 넘어 이를 구제할 현실적 필요성이 그만큼 고조되고 있어 잊어질 권리의 법제화를 미룰 수 없다는 것이 대세인 것 같다.

충분한 연구와 논의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