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름도, 나이도,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좀비가 있다. 이름마저도 존재감 없이 그저 ‘좀비R’이다. 폐허가 된 공항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R은 어느날 아름다운 소녀 줄리를 만난다. 이때부터 차갑게 식었던 R의 심장은 다시 뛰고, 그녀를 지켜내기 위해 다른 좀비들에 맞선다.

이런 이야기를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잿빛 얼굴에 시체보다 더 흉칙한 몰골의 좀비가 로맨티스트로 태어날 줄을. 영화 ‘웜 바디스’는 이런 황당한 스토리를 동화보다 아름다운 이야기로 바꿔놓았고, 세계의 소녀들은 로맨틱 좀비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이 기적과 같은 일은 니콜라스 홀트였기에 가능했다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잘 자라 뛰어난 외모에 탄탄한 연기력까지 갖춰 ‘영국의 유승호’라 불리는 니콜라스 홀트를 최근 수입사 데이지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이메일로 만났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첫 느낌은. 좀비 역이 부담스러웠을 법한데.

“너무 재미 있어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유머, 로맨스, 액션, 개성있는 캐릭터가 어우러진 게 아주 마음에 들었고 진짜 좋은 영화가 될 거란 확신이 있었다. 곧바로 이 영화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했고 나는 조나단 레빈 감독 앞에서 오디션을 본 후 기회를 얻었다.”

―여러가지 장르가 조합돼 오히려 장르의 파괴처럼 보인다.

“감독이 정말 훌륭하게 장르의 밸런스를 잘 맞췄다고 생각한다. 우스꽝스럽고 코믹하면서도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감동 드라마다. 스토리는 예상할 수 없는 동화 같고 멜로로서도 기능을 다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묘사되는 게 관건었기에 나는 나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좀비 연기에 참고한 캐릭터가 있나.

“참고 자체가 불필요했다. 좀비R은 오로지 나만의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했으니까. ”

―좀비 연기가 쉽지는 않았을것 같다. 대사 없이 괴성을 지르기도 하던데.

“하하하. 촬영을 마친 지금 나는 괴성 전문가가 된 것 같다. 처음에는 사실 무척 어색했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점점 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들을 주고 받았다.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연기했다. 정말 웃기지 않나.”

―테레사 팔머와의 작업은 어땠나.

“그녀는 아주 훌륭한 배우다. 좋은 에너지를 갖고 있었고 호흡도 빠르게 맞춰 내 연기에 균형을 잡아줬다.”

―관객들의 반응이 아주 뜨거운데. 특히 소녀들은.

“내가 흥미롭다고 느낀 점을 관객들이 함께 재미있게 느낀다는 것이 기쁘다. 일부 관객들은 내가 영화에서 눈을 거의 깜빡이지 않았다는 점을 찾아내기도 했는데 놀라웠다.”

―좀비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넣은 설정인가.

“레빈 감독은 좀비들이 말을 많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도 동의했다. 말 뿐만이 아니라 눈도 잘 깜빡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점은 꽤 괜찮은 판단이긴 했는데 나는 그런 신이 길어질 때 눈이 심하게 건조해져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알아주는 관객들이 있으니 보람이지 않나.”

박미영 기자 myp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