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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감독으로 불리던 청년 쿠엔틴 타란티노도 어느덧 중년의 한 중간을 가로질러 가는 중이다. 기괴한 느낌을 풍기던 얼굴도 신사처럼 부드러워졌고 190㎝의 장신의 몸도 조금은 구부정해졌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과 에너지는 전혀 꺾임이 없었다. 일본 도쿄 웨스틴 호텔에서 열린 영화 ‘장고:분노의 추적자’(이하 ‘장고’)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그는 파워풀한 제스처와 변함 없는 달변으로 자신의 신작은 물론 영화예술에 대한 무한 애정을 드러냈다.

‘장고’는 미국 노예제가 시행되던 시절을 배경으로 흑인 장고가 현상금 사냥꾼 닥터킹의 도움으로 자유인이 된 후 아내를 구하러 떠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작품은 할리우드 톱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이미 폭스, 사무엘 L.잭슨이 출연했다. 골든 글로브 2관왕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데다 전미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르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장고’는 러닝타임이 무려 170분에 이르지만 타란티노 감독 특유의 유머, 현실 비틀기,웨스틴풍을 가미한 액션, 빼어난 영상과 음악 등으로 지루할 틈 없는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원래는 상영본보다 훨씬 더 길었어요.영화를 찍는데만 7개월이 걸렸거든요. 원래 계획보다 3주를 더 촬영했는데 사비를 털었어요.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보다도 최선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정식 개봉 후 재편집을 거쳐 2부짜리 미니시리즈로도 선보일 계획이에요.”

서부극인데다 거친 액션신이 많아 현장에서는 사고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하지만 배우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 혼신의 열연을 펼쳤다.

“왈츠는 말이 내팽개쳐서 수술을 받았고 폭스는 몸을 너무 열심히 만들어서 어깨에 무리가 생겼어요. 두 사람의 사고는 촬영 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디카프리오의 경우는 좀 달랐죠. 디카프리오가 식탁을 내리치는 신을 찍는 과정에서 두개골 소품이 깨지면서 손에 상처를 입어 피가 줄줄 흘렸어요. 순간 모두가 깜짝 놀랐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고 그 강렬함이 장면 속에 그대로 녹아들었죠. 피가 나는데도 무시하고 연기를 이어간 그 자체가 캔디 캐릭터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고요.”

이 영화는 미국의 노예제도를 비판하고 있지만 이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링컨’과는 달리 유쾌한 조롱을 통해 자기반성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분명히 미국의 잔혹사를 말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타란티노는 “아직도 흑인과 백인의 관계에는 사회적 앙금이 남아있지 않나.

이 영화를 통해 미국의 원죄로 남아있는 노예제도에 대해 뭔가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노예 장고를 돕는 왈츠를 미국인이 아닌 독일인으로 설정한 것 역시 미국에 면죄부를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설명했다.

‘장고’는 프랑크 네로가 출연한 시르지오 코르부치의 ‘장고’(1966)에서 제목을 따왔다. 네로가 이 영화에 다시 출연하기는 하지만 타란티노는 리메이크작이 아닌 점을 분명히 했다.

“처음부터 리메이크 생각은 없었어요. ‘장고’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는 40여편이 넘죠. 코르부치의 ‘장고’를 울궈먹는 시리즈에 한편을 보태게 된 게 오히려 자랑스럽네요. 하지만 이 작품은 장고가 나온다는 것 외에는 모두가 다르죠. 네로가 내 영화에 우정출연을 해줘서 나의 장고와 코르부치의 장고가 한 장면에 나올 수 있어 너무 재미있고 좋았어요.”
타란티노는 이 자리에서 한국 영화와 한국에 대한 사랑을 표했다. 그는 2004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 대상을 안긴 장본인이다.

“아직 ‘스토커’는 보지 못했지만 할리우드에 진출한 박찬욱과 김지운의 활약에 무척 기대를 걸고 있어요. 김지운의 ‘놈놈놈’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거든요. 그리고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과 박찬욱의 ‘공동경비구역 J.S.A’를 좋아해요. 특히 ‘JSA’의 엔딩신은 지난 20년 동안 가장 멋진 마지막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인이 최고의 관객들인 것도 저는 1994년 이미 한국에서 눈으로 확인했고요. 아참, 그리고 제가 뉴욕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투자) 비빔밥 한그릇 생각나시면 들러주세요.”

도쿄=박미영 기자 mypark@munhwa.com
사진제공=소니 픽쳐스 릴리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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