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롯데마트 간다리안시티 점포에서 현지인들이 쇼핑한 물건을 카트에 가득 싣고 계산을 기다리고 있다. 롯데마트는 현지에서 처음으로 계산 대기시간을 최소화하는 ‘해피라인’ 프로그램을 도입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가 ‘바틱(Batik)데이’ 원조입니다.”

지난 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남부의 핵심상권에 위치한 롯데마트 간다리안시티 점포. 나낭 수벡띠(38) 점장은 화려한 빛깔의 바틱 의상이 가득한 진열대를 살펴보면서 이처럼 말했다. 바틱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인도네시아 고유의 염색 기법이다. 인도네시아는 3년 전 말레이시아와 경합을 거친 끝에 바틱 원조 국가로 인정받은 뒤로는 매주 금요일을 ‘바틱데이’로 정해 이를 기념하고 있다. 그는 “롯데마트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2008년부터 전 임직원이 매주 금요일을 바틱 복장을 입고 근무하는 바틱데이로 정해 왔다”며 바틱데이 원조론의 사연을 소개했다.

롯데마트가 올해로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한 지 5주년을 맞는다. 2008년 8월 네덜란드계 마크로(Makro)의 19개 점포를 인수한 이래로 현재 점포 수를 31개로 확대하자 현지 유통가는 잔뜩 긴장한 채 롯데마트를 ‘유통계의 다크호스’로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대형마트 시장 1위·재계 서열 10위권의 CT그룹을 이끌고 있는 차이룰 탄중 회장은 자사의 가장 무서운 경쟁자로 롯데마트를 지목했다. 이와 관련, 그는 지난해 말 까르푸 인도네시아법인을 인수하는 자리에서 “우리의 경쟁자는 롯데마트”라고 말할 정도였다. 차이룰 회장의 말은 외형만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CT가 인수한 까르푸 인도네시아 법인은 롯데마트의 3배에 육박하는 80여 개 점포를 현지에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이룰 회장이 아직까지는 격차가 큰 후발 주자인 롯데마트를 경쟁자로 지목하면서까지 위기감을 드러낸 이유는 롯데마트가 현지 유통가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나낭 점장은 인도네시아말로 큼지막하게 적어 놓은 수박의 당도 표시 안내판을 가리켰다. 우기여서 수박 당도 수치가 표준치보다 떨어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당도가 떨어지는 것을 스스로 투명하게 표시하는 것 자체가 인도네시아 대형마트 업계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시도였다”면서 “전 직장에서 일할 때는 사장이 무엇을 원할까 만을 고민했는데 여기서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해피라인’은 롯데마트가 현지 대형마트 업계의 표준을 바꿔 놓는 대표적인 시도다. 현지 대형마트는 툭하면 주차장으로 변하는 자카르타 시내도로처럼 계산대 앞에서 30분 이상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롯데마트는 계산대 앞에 카트 두 대만 기다려도 바로 옆에 새 카운터를 열어주고 있다. ‘롯데마트는 정말 빠르다’는 인식을 현지인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인건비가 추가로 들더라도 서비스 차별화를 위해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게다가 롯데마트의 점포당 생산성이 인근 경쟁사 점포보다 적어도 1.3배 이상 높아 경쟁사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롯데마트의 인도네시아 시장 개척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마크로 인수 직후 7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인도네시아로 날아온 문영표 롯데마트 동남아 본부장(당시 인도네시아 법인장)을 기다린 것은 다름 아닌 240여 명의 사표였다. ‘느린 문화’에 익숙한 현지인에겐 ‘빨리빨리’로 통하는 한국 봉제기업에 대한 앞선 경험은 롯데마트를 공포의 대상으로 보게 했다.

롯데마트의 실험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속도전’이 강점인 한국식 문화와 세계적인 수준의 공예 기술을 자랑하는 인도네시아 특유의 섬세한 로컬 문화를 융합하는 것. 경쟁사도 현지 대형마트의 생산성을 놀랍게 향상시키고 있는 롯데마트의 실험을 곁눈질하기 시작했다. 물론 롯데마트의 실험은 아직 진행형이다. 롯데마트가 목표대로 2018년에 인도네시아 대형마트 시장 1위에 오르고, 동시에 현지인의 사랑을 받는 기업이 될지 여부가 관건이다.

롯데마트는 인도네시아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역으로 영토를 확대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국내 점포 수를 추월한 중국(105개 점포)과 베트남(4개 점포) 등을 포함해서 총 140개의 해외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소비시장 침체 장기화, 골목상권 규제 강화 등의 3중고 속에서 새로운 성장엔진을 만들기 위해 해외 시장 개척에 ‘올인’하고 있다.

자카르타 = 글·사진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