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30일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 한화케미칼 소금 집하장에서 직원들이 가성소다와 염소 제조를 위한 공업용 소금 운송 작업을 점검하고 있다. 여수=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여수산단)에는 해외 유명 관광지에 버금갈 만한 ‘비경(秘境)’이 있다. 멀리 여수산단 부두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하고,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소금산’이 그곳이다. 한화케미칼 여수공장에 자리잡은 이 소금산은 공장의 핵심 생산품인 가성소다와 염소를 만드는 데 쓰이는 공업용 소금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졌다. 거대한 소금산의 모습이 설산(雪山)과 같은 장관을 이루고 있어 직원들 사이에서는 ‘눈썰매장’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30일 방문한 한화케미칼 여수공장의 소금집하장에서는 소금산 위에 올라가 소금을 퍼내고 있는 포클레인과 소금을 실은 덤프트럭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하늘 위의 철도’를 연상케 하는 집하장 상공 10m 높이의 길다란 운송용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온 소금들은 소금산 위로 눈처럼 쏟아져 내렸다. 인도, 호주, 멕시코 등 세계 각지의 소금 광산에서 수입한 소금은 하루 3200t 정도가 생산공장으로 옮겨진다. 집하장에 쌓여 있는 양만 14만∼15만t에 달한다.

한화케미칼 여수공장은 이 소금으로 플라스틱 등 각종 화학제품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화학공정의 ‘소금’이라 할 수 있는 가성소다와 염소를 만든다. 가성소다는 흔히 ‘양잿물’이라 불리는 염기성 물질로 세제에 주로 쓰이고, 염소는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염화비닐(PVC)을 만드는 반응물질로 쓰이는 원료다.

한화케미칼 여수공장에서는 하루 3200t 정도의 소금을 물에 녹여 전기분해를 통해 염소와 가성소다로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가성소다·염소 사업 부문에서 국내 최대 생산능력과 내수시장 점유율 1위, 수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국내 대표 업체다. 가성소다·염소로만 매년 1조 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가성소다와 염소 생산을 총괄하는 CA생산팀은 24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전기분해 과정을 실시간 점검하고 있다. 2개팀이 4개의 생산라인을 맡아 4조 3교대로 근무한다. 소금물의 유량을 조절하고 소금물을 정제, 전기분해를 통해 액체상태의 가성소다와 염소가스가 생산된다.

이날 방문한 CA생산1팀의 생산라인 현장에서는 소금물이 수백 개의 투명한 파이프를 지나가면서 파이프에 연결된 전선을 통해 흘러들어온 전기를 만나 가성소다와 염소로 분해되고 있었다. 파이프는 길다란 비닐 커튼에 둘러싸여 있는데, 이 커튼은 작업 과정에서 가성소다와 염소가스가 작업자에게 노출되는 것을 막아주는 보호 기능을 한다.

이렇게 생산된 염소는 석유화학의 기초원료인 에틸렌과 반응해 PVC 중간재인 에틸렌디클로라이드(EDC)를 생산하는 데 쓰인다. 한화케미칼은 제품 생산의 기초인 염소 생산부터 중간재 EDC를 거쳐 완제품인 PVC, 폴리에틸렌(PE) 등을 모두 생산하면서 1980년대 국내 최초로 수직계열화를 달성했다.

제품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한화케미칼은 PVC 생산 국내 2위, PE 생산 국내 1위, 태양광 발전용 전지 등에 쓰이는 고부가 수지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 생산 국내 1위 등 전 부문의 석유화학제품에서 선두권의 생산능력을 자랑한다.

한화케미칼 관계자는 “투자비용이 많이 드는 석유화학 산업의 특성상 수직계열화, 산업단지화를 해야 규모의 경제 효과가 작용해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다”며 “생산에 필요한 제품군을 모두 갖추면 기술을 개발하고 선점하는 효과도 크다”고 설명했다.

한화케미칼은 올해부터는 국내 생산 1위에 그치지 않고 해외에서 직접 제품을 생산해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민간 석유회사 시프켐과 함께 설립한 합작사 IPC의 사우디아라비아 공장에서 올해 하반기부터 EVA와 PE 15만t을 생산하게 된다. 사우디아라비아 공장이 가동되면 한화케미칼은 EVA 생산규모 31만t으로 세계 2위 규모를 달성하게 된다.

한화케미칼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태양광 발전 사업도 본격화한다. 여수산단 매립지에 건설 중인 1만t 규모의 폴리실리콘 공장이 올해 하반기 완공되면 내년 초부터 상업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실리콘과 염소를 반응시켜 만드는 폴리실리콘 제조 과정에도 한화케미칼의 소금산에서 만들어지는 염소가 활용된다.

한화케미칼 관계자는 “경쟁기업들은 재료를 사서 완제품을 만들거나 일부 생산 과정만 직접 하고 있지만, 우리는 일괄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어 가격 경쟁력이 크다”며 “특히 1980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가성소다·염소 분야는 해외 유명 석유화학 기업보다도 기술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여수 = 김하나 기자 han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