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사고(전3권) / 윤여일 지음 / 돌베개

책은 상품으로 소비되는 관광이 아닌, 진정한 여행의 본질을 묻고 여행자의 내면적 성찰을 강조하는 새로운 감각의 여행기다. 현재 서점가를 점령하고 있는 단순 가이드북 또는 관광명소를 좇으며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간략히 소개하고 지은이의 감상을 곁들이는 방식의 여행서들과는 여러모로 차원이 다르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지역 연구 코뮌인 수유너머 R의 동아시아 연구자로 활동했던 저자는 세 권이 동시에 출간된 여행기의 첫 장을 프랑스의 문화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저서 ‘슬픈 열대’에 나오는 여행에 대한 성찰로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여행이란 게 이런 건가 보다. 나를 둘러싼 이 황야를 거니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속 황야를 살피는 일이로구나.” 레비스트로스는 1930년대 브라질에 체류하면서 조사한 원주민 부족들의 사회와 문화를 통해 문명과 야만의 개념을 비판한 ‘슬픈 열대’에서 “여행이란 게 싫고 탐험가들도 싫다”고 토로하기까지 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열대를 찾았던 유럽의 탐험가나 여행가, 인류학자 모두 유럽을 벗어났으나 유럽이라는 맥락에서는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럽 문명의 시간관 위에서 낯선 존재의 공간을 내려다봤는데, 저자는 한국인에게 일종의 우월감을 안겨주는 동남아시아 관광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다.

여행의 출발을 자신의 고정관념을 모두 버리는 데서 시작한 저자는 세 권 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책에 자신이 여행지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을 다수 수록해 놓았다. 독자들의 내용 이해를 돕고 책에 생동감을 더하기 위한 선택이지만, 여행자의 윤리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저자는 여행자의 카메라가 지닌 폭력성에 대한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사진을 찍고 그 이미지를 소유하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피사체가 된 상대방은 담기지만 정작 그 사람과 함께 있었던 여행자 자신의 흔적은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이라는 비판도 있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멕시코와 과테말라에 대한 여행기록인 첫째 권에 담긴 문제의식은 백인 식민자와 마야 원주민 간의 오랜 갈등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멕시코의 현실이다. 가령 아즈텍왕국을 정복한 에르난 코르테스의 통역관이자 애인이자 후첩이었던 말린체의 이름에는 종족의 배신자라는 오명과 메스티조의 어머니라는 영광스러운 지위가 뒤섞여 있다. 저자는 오랜 연원을 가진 백인 식민자와 원주민의 역사적 갈등이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활동 등 오늘날까지 멕시코 사회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 주목한다. 배낭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인도와 네팔을 다룬 둘째 권에서는 ‘여행자의 윤리를 묻다’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공정 여행과 여행자의 윤리 문제를 고민한다. 저자가 공부하고 있는 영역인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를 다룬 셋째 권에서는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와 루쉰(魯迅) 등 사상가들의 흔적을 좇으며 중국과 일본 등 ‘가깝고도 먼’ 인국(隣國)의 의미에 대해 돌아보고 있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