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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숙명여대 법과대 교수 법학

27일 0시부터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위한 공식 선거운동이 개시됐다. 투표 전날인 12월 18일 밤 12시까지 22일 간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요체다. 그래서 선거를 어떻게 잘 치르느냐 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 확립을 가늠하는 올바른 잣대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 선거의 진행 과정을 보면 과거의 잘못된 선거 풍토와 크게 다를 바 없고, 과거의 전철을 그대로 또다시 밟고 있는 듯해 매우 우려스럽다. 금권·관권이 판을 치던 과거 선거보다는 많이 나아졌다지만, 아직도 기대에 못미쳐 개선이 필요한 선거의 적(敵)이 많다.

하나는, 후보자 스스로의 포퓰리즘 정책 공약(公約) 남발이다. 여야 후보를 막론하고 공약들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특히, 무상복지와 군사·교육·정치 개혁 등에 관한 정책 공약들은 정확한 예산의 뒷받침과 치밀하고 구체적인 정책 수단 없이 사탕발림으로 누구에게나 듣기 좋게 말한다. 그렇게 잘할 것 같으면 왜 지금까지 오랫 동안 정치했던 사람들이나 행정부, 그리고 정당들은 그동안 국민을 무슨 심정(心情)으로 고생시켰는가? 그리고 그런 어려운 정책들이 대통령 마음대로 하겠다고만 하면 다 되는 것들인가? 과거의 화려한 공약들은 다 지켜졌는가? 공약에 대한 판단은 국민의 몫이라지만, 당선되고 보자는 식으로 아무 공약이나 남발하는 후보들의 행태는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선거 때마다 되풀이돼 가장 안타깝고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것으로, 상대 후보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나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것이다. 지식인 집단도, 정통 정당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전도 공식 선거운동기간 이전에 여야 할 것 없이 일일이 지적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검증 안된 폭로와 의혹 제기가 이어졌다. ‘묻지마’식 폭로와 정확한 근거도 없는 ‘아니면 말고’식 의혹 제기 등 겉으론 공명선거와 페어플레이를 외치면서도 온갖 네거티브 선거전이 판을 쳤다.

공직선거법 제250조에는 허위사실 공표죄, 제251조에는 후보자 비방죄가 엄연히 규정돼 있다. 그러한 행위들이 형법상 무고죄나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검찰도 상대 후보 비방 목적의 허위사실 유포 사범과 흑색선전사범을 엄벌하겠다고 선언하고, 선거관리위원회의 고소·고발이 없어도 자체 색출해 사법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요즘 검찰의 상황을 보면 제 발등의 불끄기에 바쁜 나머지 선거사범 처리를 제대로 할지 걱정된다. 법원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2011년 사기범 실형선고율이 41%나 되는데 비해 선거사범의 실형선고율은 10%도 채 안 된다. 국민의 의사가 선거과정에서 왜곡되고 굴절될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법원이 더 확실하게 인식하기 바란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은, 나중에 사법처리된다 하더라도 법적 판단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검증이 안 되는 무차별 폭로나 의혹 제기가 선거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선은 다른 선거와 달리 어떤 경우라도 사실상 선거무효나 당선취소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이 대선과 같은 큰 선거에서 흑색선전을 더욱 부추기는 것 같다.

선진사회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사회에서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잖게 과정이나 절차를 중요시하는 사회적 인식이 확립돼야 한다. 선거가 축제가 되고 아름답고 멋진 페어플레이가 돼야 한다. 선거를 주관하는 중앙선관위나 검찰·경찰이 책무를 다해, 엄연히 금지돼 있는 후보자 비방과 흑색선전 등에 대해 발견 즉시 엄정한 조치를 취해야 함은 물론이다.

대통령의 수준은 곧 나의 수준이며, 깨끗하고 올바른 선거로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도 곧 나의 한 표(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