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파쿠르 동호회 회원들이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 내의 한 공터에서 공중회전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그들에게 도심은 하나의 놀이터다.

벽과 벽 사이를 자유롭게 뛰어넘고 장애물을 만나도 막힘 없이 통과한다.

그들이 이렇게 도심을 누비는 데 사용하는 도구는 오직 자신의 몸뿐.

아무리 높은 장애물이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드는 그들은 한 마리 표범처럼 오늘도 도심 정글을 누빈다.

지난 10월 28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 내의 한 공터에서 10대 청소년 10여 명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에게는 ‘야마카시’로 더 잘 알려진 익스트림 스포츠 ‘파쿠르’를 즐기는 동호회 ‘엔터’의 회원들로 1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대학교와 공원 등을 돌며 자신들의 취미를 즐기고 있다.

15분 가량의 스트레칭이 끝나자 각자 넓게 퍼져 자유로운 기술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안전한 착지를 위해 낙법 연습을 시작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고난도 기술인 공중기술을 선보였다. 또 일부 학생들은 자신의 키보다 2배는 더 돼 보이는 벽을 발과 손을 이용해 순식간에 올라타기도 했다. 마치 체조 선수 같은 이들의 화려한 기술에 이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환호성도 터져 나오기도 했고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파쿠르는 지난 1990년대 말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장비 없이 건물을 타고 놀던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극한의 익스트림 스포츠로 도심의 빌딩을 맨몸으로 기어오르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고공점프로 건너뛰는가 하면 배관이나 로프 등을 타고 담을 뛰어넘기도 한다.

파쿠르 동호회 엔터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고등학생 이남솔(18) 군은 “우리가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 대부분은 운동으로 보기보다는 위험한 장난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도장과 같이 안전한 장소에서 충분한 사전 연습과 반복 훈련을 통해 동작들을 숙달한 뒤 실전에서 활용하는 만큼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친구가 보여준 화려한 기술에 반해 본격적으로 파쿠르의 세계에 뛰어들게 됐다는 이 군은 처음에는 한 동작을 익히는 데만 반년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이 군은 “처음에는 안전을 위해 낙법부터 배우기 시작한다”며 “낙법은 크게 랜딩(뛰어내릴 때 다리에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양 손과 발을 모두 이용해 땅으로 뛰어내리는 방식)과 롤링(뛰어내린 뒤 앞으로 구르며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나뉘는데 이 동작을 수개월 간의 반복 연습을 통해 완벽하게 익혀야 비로소 본격적인 기술들을 연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군은 “지금 이곳에서 운동하는 친구들 모두 나이는 어리지만 최소 3년에서 많게는 5년간 꾸준한 훈련을 통해 지금의 수준에 도달한 만큼 아무런 준비 없이 단순한 호기만 가지고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기초 운동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고급 기술들을 훈련하기 시작했다. 학교 가장 안쪽으로 이동하자 사방이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장소가 나왔고 이들은 하나둘씩 차례에 맞춰 맨몸으로 벽을 타기 시작했다. 차례로 2m 높이의 벽에 올라선 이들은 다시 몸을 날려 4m 높이의 벽으로 뛰기 시작했다. 자칫 손이라도 미끄러져 벽을 제대로 잡지 못하기라도 하면 크게 부상을 당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이들의 얼굴에서는 어떤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군은 “손과 발을 이용해 높은 담을 오르는 기술을 월런(wall run)이라고 하고 벽에서 벽으로 이동하는 기술을 캣투캣(cat to cat)이라고 하는데 이런 기술 모두 안전한 장소에서 수차례 반복 훈련을 통해 실력을 쌓은 뒤 실전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군은 “파쿠르라는 운동이 몸을 쓰는 운동이기 때문에 전혀 다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 시도하자’는 원칙하에 무리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큰 부상을 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위험할 수도 있는 파쿠르를 왜 취미로 갖게 됐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감 향상을 꼽았다. 엔터팀 막내이자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송상현(15) 군은 “체격도 왜소하고 성격도 내성적이어서 학교에서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다”며 “하지만 파쿠르를 접하게 된 이후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고 이런 자신감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말했다. 특히 송 군은 “무엇보다 튼튼해진 신체를 바탕으로 학교생활도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됐다”며 “예전에는 나를 무시했던 친구들도 지금은 내게 다가와 어떻게 그렇게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경력 4년 차의 강초원(16) 군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뚱뚱하고 성격도 내성적이어서 친구들도 많지 않았고 심지어 우울증을 앓기도 했었다”며 “그러나 파쿠르를 시작한 뒤 몸도 날씬해지고 같은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과 친분도 쌓게 되면서 인생이 180도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파쿠르의 또 다른 매력으로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없는 자기 수련이라는 점을 꼽았다.

강 군은 “파쿠르의 특징은 다른 운동과는 달리 경쟁이 없다는 것”이라며 “다른 운동의 경우 누가 더 좋은 기술을 선보이느냐, 혹은 누가 더 빠른 시간 안에 기술을 선보이느냐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우열을 나누지만 우리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발전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또한 “경쟁이 없다는 것은 정형화된 규칙이 없다는 것이고 이는 곧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곳에 있든지 몸만 있으면 무한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며 파쿠르의 매력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런 이들의 열정과는 달리 세상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파쿠르를 시작한 지 5년째인 최성문(17) 군은 “크게 다친 적은 없지만 운동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부상을 입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부모님이 운동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또 길거리에서 친구들과 운동을 하고 있다 보면 불량 학생으로 보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편견과 싸우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편견들 때문에 운동할 장소 구하기조차 쉽지 않다. 최 군은 “주로 대학교나 공원 등에서 운동을 즐기고 있는데 우리가 훈련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분들이 신고를 하거나 쫓아내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운동을 즐기기가 어렵다”며 “외국의 경우 훈련장도 보편화돼 있고 인식도 많이 개선된 상황인데 국내에는 워낙 즐기는 사람들이 적다 보니 그냥 철없는 아이들의 위험천만한 행동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취재 당일에도 학교 경비원으로 보이는 한 60대 남성이 운동을 하고 있던 이들에게 다가와 학교 내에서 위험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며 이들을 제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들은 여전히 사회의 편견과 싸우며 힘겹게 자신들의 취미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들의 모습에서는 어떠한 절망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운동을 시작한 지 3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5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지만 이들의 열정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입고 있던 옷도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팀장의 구령에 맞춰 자신들의 기량을 갈고 닦았다.

팀장인 이남솔 군은 “가끔씩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원래 잘하던 기술이 잘 되지 않는 슬럼프가 오기도 하지만 연습을 꾸준히 해 40~50대가 넘어서까지도 파쿠르를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장병철 기자 jjangbe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