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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흰 연기를 힘차게 내뿜었지만 점점 속도가 떨어졌다. 선두에서 달리던 괴한이 줄에 매단 쇠뭉치를 돌려 차창을 향해 던졌다. 철호가 급히 현주를 안고 허리를 숙였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쇠뭉치가 열차 안으로 떨어졌다. 차가운 바람이 그 칸을 휘감았다. 뒤따르던 괴한 둘이 마찬가지로 쇠뭉치를 던져 유리창을 깼다. 괴한들이 날다람쥐처럼 말을 버리고 기차에 들러붙었다.

“피하십시오. 여긴 저희가 맡겠습니다.”

보부상들이 철호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홍도깨비가 만일을 대비해서 붙여준 마포 객주의 장정들이었다.

철호가 현주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벌써 칸 뒷자리에선 괴한과 장정들이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장정들은 탑승 전 간단한 소지품 검사를 받았기 때문에 무기가 없었다. 반면에 괴한들은 손에 꼭 맞는 무기를 쥐곤 장정들을 때리고 찌르고 벴다.

기차는 어느새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철호가 옆 칸으로 가기 위해 문 손잡이를 쥐는 순간 꽝 소리와 함께 문짝이 통째 뜯겼다. 괴한 셋이 어느 틈에 앞질러 갔던 것이다. 철호가 단검을 피하며 이마로 상대의 코를 들이받았다. 뒤이어 달려든 괴한의 창이 철호의 팔뚝을 찍었다.

“윽!”

철호가 비명을 삼키며 창에 찔린 채 턱을 때렸다. 팔뚝에 박힌 창을 뽑기도 전에 마지막 괴한이 철호의 사타구니를 걷어찼고 가방을 빼앗기 위해 팔을 뻗었다. 철호는 나뒹굴면서도 피가 철철 나는 오른손으로 가방을 꽉 붙들었다. 뒤에 섰던 현주가 살쾡이처럼 달려들어 괴한의 얼굴을 할퀴었다. 코와 입을 가렸던 복면이 바닥에 떨어졌다.

“지, 진태 오빠?”

현주가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철호도 가방을 쥔 채 고개를 들었다. 얼굴을 들킨 진태가 화를 냈다.

“가방만 내놔!”

철호가 한 걸음 물러서며 버텼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이건 강도 짓이야. 열차 강도라고.”

진태가 비웃었다.

“알아! 아니까 가방 이리이리! 죽고 싶지 않으면 가방 주고 무릎 꿇어.”

현주가 바락바락 악을 써댔다.

“오빠! 미쳤어? 권 행수가 시킨다고 강도 짓까지 해?”

“닥쳐! 이건 권 행수가 시킨 게 아니야. 지금 내겐 그 가방이 필요해. 이기기 위해선 이보다 더한 짓이라도 할 거야. 장철호! 너야말로 변장한 채 경인선에 탄 까닭이 뭐야? 넌 늘 그랬어. 나 박진태의 승리가 확정된 판에 끼어들어 난장을 쳐 엉망으로 만들었으니까. 이번에는 안 돼. 너 때문에 난 최인향도 잃었어. 본점 이사 자리까지 너에게 빼앗길 순 없어. 가방만 넘겨. 그럼 너희 남매는 살려 보낼게. 약속하겠어. 장철호! 현주는 살려야 하지 않겠어?”

철호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고개 젓는 현주의 등 뒤로 홍도깨비의 장정들이 쓰러졌다. 싸움으로 잔뼈가 굵은 북두칠성을 당하지 못한 것이다. 북두칠성 일곱 명은 건재했다. 이기기 힘든 싸움이었다.

“저들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건 곤란해. 저놈들을 데리고 기차에 탄 철호 네 잘못이 커. 벌써 서너 놈은 황천 가는 배에 올랐고 나머지도 뒈지기 직전이라고. 저놈들을 살려 보내면 홍도깨비와 전쟁을 해야 돼. 어차피 치를 전쟁이지만 명분을 빼앗길 순 없지.”

기차가 굽이를 힘차게 돌았다.

“오빠! 내 걱정은 마. 가방만 주면 우릴 살려주겠다는 말도 거짓일 거야.”

“닥쳐!”

진태가 손에 든 도끼를 높이 들었다. 현주가 지지 않고 소리쳤다.

“쳐봐. 오늘 내가 도끼날에 맞아 죽을 팔자인가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