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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는 기어이 눈물을 쏟았고 철호는 양복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오빠에 대한 불만, 경인선 이 기차 안에서 전부 털어놓으렴.”

현주는 불만 대신 사과부터 했다.

“결혼식 못 가서 정말 미안해. 명자는 잘 있지?”

철호를 위한 기념일을 챙기지 못한 건 현주도 마찬가지였다. 혈육 간의 작은 기쁨조차도 나누지 못할 만큼 힘겨운 시절을 지나온 것이다.

“아기를 가졌단다.”

“정말? 그럼 나 곧 고모 되는 거야?”

현주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철호도 따라 웃으며 물었다.

“그 손수건 기억해?”

그미는 제 손에 들린, 눈물을 닦은 손수건을 제 무릎 위에 펴고 살폈다. 크고 긴 날개를 가진 학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명자가 나랑 헤어질 때 두 개를 만들어 각자 하나씩 간직하자며 건넸던 건데…….”

현주는 감정이 북받치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세례식 마치고 나면 나랑 개성으로 가자. 명자가 널 얼마나 만나고 싶어 하는지 모를 거야. 진작부터 이 손수건을 네게 주라고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에야 가지고 왔네.”

“그래, 가자! 나도 명자가 보고 싶어. 한데 난 명자를 위해 뭘 해주지? 옛 친구와 재회하는 자린데, 올케와 처음 만나는 자린데…….”

“명자가 원하는 선물이 있어. 너만 줄 수 있는 선물이야.”

“나만? 그게 뭐야?”

“노래! 명자와 태아를 위해 고운 노래를 불러줄 수 있겠어?”

“물론이지. 온종일 불러줄게. 명자를 내 무릎에 뉘고 행복하게 잠들 때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테야.”

“고마워.”

현주가 손수건을 고이 접어 옆구리의 작은 주머니에 넣었다.

“왜 이걸 건넸어? 콧물에 눈물이 범벅이네.”

“명자는 손수건을 네가 꼭꼭 숨겨 보관하길 원치 않는다고 했어. 방금처럼 언제든 네가 필요할 때 꺼내 썼으면 한대. 그래야 자기를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줄 것 아니냐고 그랬단다.”

“오! 역시 내 친구 명자답네. 어른들은 어렸을 때부터 명자가 많이 모자란다며 걱정을 하셨지만, 난 알았어. 명자에겐 세상을 느끼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단 걸. 내가 노래로 내 느낌을 담듯이 명자는 수를 놓는 거였어. 이젠 인향 언니가 끼어들 틈이 없겠네. 그동안 혹시 연락 온 거라도 있었어?”

“전혀!”

철호가 말을 아꼈다. 현주는 인향에게서 연상되는 또 다른 남자의 이름을 꺼냈다.

“진태 오빠와도 이제 그만 겨뤄! 진태 오빠 뒤엔 권 행수가 있어. 권 행수가 어떤 사람인지는 오빠도 알지? 갖고 싶은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는 사람이야. 권 행수가 당장 원하는 건 본점 이사에 진태 오빠를 앉히는 것이고.”

“알지. 알기 때문에 그들에게 대한천일은행을 맡길 수 없단 거야. 민족을 위한다는 은행의 설립 취지 대신 사리사욕을 채우는 쪽으로 은행을 운영하려 들 거니까. 그럼 이 나라의 앞날은 곧장 먹구름 속에 들고 만다.”

“이미 다 끝난 싸움 아니야? 권 행수도 진태 오빠도 승리를 자신하고 있어.”

“아직 끝난 건 아니야.”

“오빠! 혹시 그 가방에…….”

현주는 역시 눈치가 빨랐다.

그때 열차 후미를 살피던 보부상이 외쳤다.

“말입니다. 말들이 쫓아옵니다.”

철호와 현주, 그리고 승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창가로 향했다. 기차가 오르막으로 접어드는 순간 숨어 기다리던 말들이 비탈을 따라 철로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말을 탄 괴한들은 모두 입과 콧잔등을 복면으로 가렸고 허리나 등에는 검이나 창, 그리고 도끼 같은 무기를 둘렀다. 열차 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