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영란/숙명여대 법과대 교수 · 법학

잔인하고 야만적인 범죄에 분노한 여론이 사형(死刑)제도에 눈을 돌려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범죄자들에게 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형벌의 집행은 법무부 소관이다. 법원이 고심 끝에 신중하게 사형을 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15년 동안 종교계, 일부 시민단체, 그리고 유럽연합(EU)의 눈치를 보는 외교라인의 거센 반대에 부닥쳐 법무부가 그 집행을 회피해 온 것이다. 국민 다수가 사형 폐지를 반대하고, 대법원이 실제로 사형을 선고하고, 헌법재판소가 사형 합헌결정을 내림에 따라 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으니 사실상 그 집행을 하지 않음으로써 사형폐지국과 같은 이미지를 받고자 하는 집권자의 자의에 의한 ‘꼼수’인 셈이다.

우리 형법의 형의 종류에 사형이 엄연히 명시돼 있고, 형사소송법에 그 집행절차가 규정돼 있으므로 법원이 선고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은 곧 법무부 장관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누구보다 앞장서 법을 지켜야 하는 법무장관의 직무유기가 논란이 되자 청와대는 사형 집행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며 관망하고 있다. 그러나 사형 집행은 법무장관이나 대통령이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게 아니다. 다시 말하면, 사형의 집행은 법대로 해야 하는 준법의 기본이지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좌우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범죄 대책으로서는 사후처벌보다는 사전예방이 최선이다. 하지만 예방책에는 완벽한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이미 저지른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함으로써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사적 복수를 국가가 대신할 수 있고 범죄자를 격리시킴으로써 범죄의 불안과 공포를 해소시킬 수 있다.

사후처벌인 사형의 집행을 회피하는 것은 사형 제도 자체를 유명무실하게 하는 것으로, 다수의 인명을 살해하고도 자신의 생명만은 보장받는 것이므로 인권과 정의의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처참하게 살해당한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는 정부가 살인자의 생명을 버젓이 보장해주는 현실을 보면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슬픔과 분노와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피고인의 인권 보장을 이유로 무고한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인권을 침해해도 되는가?

사형 폐지론자들은 사형이 범죄억지 효과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포이에르 바흐의 심리강제설과 죄형법정주의에 따르면 어떠한 행위가 범죄이고 그 범죄행위를 하면 어떤 처벌을 하겠다는 것을 미리 정해 두면, 범죄로 인한 쾌락과 처벌로 인한 불쾌를 저울질해 사형 등 처벌로 인한 불쾌가 더 클 때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때문에 범죄억지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극악범죄자들이 얼마나 이기적이며 자신의 목숨을 중히 여기는지는 강도가 자신의 범죄를 신고하지 못하도록 강간을 하고, 어린이 대상 성폭행범이 자신을 알아볼까봐 살해를 기도하는 데서 볼 수 있다.

남의 목숨을 빼앗으면 내 생명도 박탈당한다는 원칙을 명시하고 원칙대로 집행하면 범죄억지력을 확보할 수 있다. 실제로 가정파괴범이 기승을 부릴 때 집중심리를 통해 속전속결로 사형을 집행한 이후 놀랄 만큼 범죄가 줄었다는 통계가 있다. 오판 가능성으로 인한 상투적인 사형 반대 논리도 수사기관의 첨단 과학수사와 법원의 신중한 삼심제로 극복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사형 집행 주장이 무식하고 선동적인 단순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범죄방지책으로 빈곤퇴치와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정치·사회·문화 수준을 향상시킬 것을 주장한다. 어느 세월에 빈곤을 퇴치하고 여러 분야의 수준을 향상시킬 것인가? 그 사이에 소리없이 당하는 피해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 불확실하고 꿈같은 대책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