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의회가 원자력 기본법 날치기 개정을 통해 핵무장의 길을 연 데 이어 이번엔 총리 직속 위원회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주문하고 나서 동북아안보지형에 큰 파란을 몰고올 조짐이다.

5일 NHK에 따르면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 직속 위원회는 “보다 장기적으로 안전보장면에서 능동적 평화주의를 견지하기 위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된 해석을 바꿔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현실적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치 않는 평화 헌법 개정 같은 공식적인 경로를 거치지 않고 우회로를 통해 이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지난 6월 원자력 기본법 날치기 통과 당시에도 원자력 기본법이 아니라 원자력 규제위원회 설치법의 부칙이 규정한 기본방침을 변경하는 ‘꼼수’를 쓴 것과 동일한 맥락으로 보인다.

일본은 2차대전 이후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평화 헌법 9조에 따라 일본의 방위와 관계 있는 타국이 공격받았을 때도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일본은 그러나 지난 2010년 방위계획 대강을 6년 만에 개정해 자위대 기동성을 대폭 강화했다. 또 지난해 12월 ‘무기 수출 3원칙’ 완화, 지난 6월 자위대의 42년 만의 도쿄(東京) 무장 훈련 등 북한의 핵무장과 미사일 발사, 중국의 패권 확대를 빌미로 오랜 염원인 평화헌법 개정과 재무장을 시도해왔다. 특히 집권 민주당과 자민당 등 기존 정당이 국민에게 외면받는 사이 일본 핵무장을 주장하는 극우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大阪) 시장 같은 신예 정치인이 스타로 떠오르자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이 모두 강경 보수 입장으로 휩쓸려 가고 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해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해 외국과의 무기 공동 개발과 수출의 길을 튼 데 이어 지난 6월 법개정을 통해 핵무장의 길을 열어놓았으며 우주활동 관련법에서는 우주 활동의 ‘평화적 목적 한정’ 조항을 삭제했다. 앞서 자민당은 지난 4월 ‘일본의 재기를 위한 정책’ 공약을 발표하면서 ‘헌법 개정’을 첫째로 내세웠다. 당시 자민당의 개헌 초안은 ‘국기 국가의 존중 및 자위권의 보유’를 헌법에 명기하고 군대 보유 금지 조항에 따라 자위대로 불렸던 방위력을 정식 군대 호칭인 ‘국방군’으로 부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관해서는 자민당뿐 아니라 노다 총리를 필두로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 방위상, 외무상을 지낸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민주당 정조회장 등도 집단적 자위권 도입을 찬성하고 있다.

일본의 이 같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시일 내에 집단적 자위권이 용인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5일 문화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집단 자위권을 미일동맹 속에서 행사하겠다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한법 개정을 통해 집단 자위권을 갖는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무리”라면서 “총리직속위원회가 장기적 비전 속에서 제안을 해도 현실화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진 센터장은 이어 “총리 직속위원회가 이 같은 집단자위권 행사를 주문한 것은 일본 내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과 맞물린 일본 재무장화의 일관된 움직임”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인 정계 개편과 오는 9월쯤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총선거 과정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포함한 헌법 개정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며, 만약 총선에서 자민당이나 하시모토 시장 등 보수 우파가 승리를 거둘 경우, 이들은 헌법 개정을 통한 재무장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