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유장희 동반성장위원장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실에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건물을 나서며 활짝 웃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지난해 말, 미국을 휩쓴 이 한마디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심화된 경제 양극화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상생’과 ‘공생발전’은 어느덧 경제계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동반성장위원회’.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해소해보자는 취지로 지난 2010년 12월 출범한 민간 차원의 사회적 합의기구다. 외형은 순수 민간자율조직이지만, 그동안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나 동반성장지수 공표 과정에서 보여준 위력은 웬만한 정부기관 이상의 폭발력을 갖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은 대기업 대표 9명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동반성장위원회를 공정거래위원회만큼이나 무척 부담스러워한다. 동반성장위원회에 ‘밉보여(?)’ 찍히기라도 하면, 자칫 ‘탐욕에 가득 차 자기 뱃속만 채우려하는 악덕기업’이라는 여론의 비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동반성장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유장희(71) 위원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취재 차를 타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사무실로 향하던 중 뉴스 속보 하나가 귓속에 꽂혔다.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지방자치단체가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영업시간을 제한한 처분에 대해 법원이 절차의 위법성을 문제삼아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동반성장’, 앞으로 갈 길이 멀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유 위원장과 마주 앉았다.



#“동반성장, 차기 정부에서 더욱 강조될 것”

정운찬 초대 동반성장위원장의 뒤를 이어 유 위원장이 취임한 게 지난 4월30일. 2개월 가까운 동반성장위원장 경험은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대기업·중소기업이 힘을 모아 동반성장을 통해 경제강국으로 나가자는 취지인데, 그동안 동반성장에 대한 해석의 차이도 있고 일부 잡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안타깝더라구요. 그래서 동반성장 개념에 대한 갭이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동반성장에 대해 확실히 정의를 내리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의를 바탕으로 사업을 이끌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기업을 압박하거나 대립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해 상부상조가 가능하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취임 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표들을 만날 때마다 계속 이런 대목을 강조하니까 우리의 진정성이 통했는지 분위기가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인터뷰의 첫머리는 덕담으로 시작했지만 이 같은 분위기를 계속 끌고갈 수는 없었다. 동반성장위원회에 대해 일부 대기업이 표출하는 불만의 정도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5월 동반성장위원회가 4개 등급으로 구분해 동반성장지수를 발표한 것을 놓고 산업계 일각에선 “대기업 줄세우기 아니냐”며 노골적인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유 위원장은 어떻게 생각할까.

“동반성장지수의 본래 취지는 기업을 순위로 줄을 세우자는 게 아니에요.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의 현황을 명확히 파악하고 기업별 동반성장 수준을 평가해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촉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동반성장이 필요하고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상을 선정했고요. 동반성장을 잘 하는 대기업은 당연히 협력사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은 대기업에 이익으로 돌아오고 건강한 기업생태계 구축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자발적인 동반성장 참여가 필요합니다. ‘보통’이나 ‘개선’ 등급에 포함돼 있는 대기업들에는 위원회에서 개선방법과 더 잘할 수 있는 분야 등 동반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일각에서 “경영실적이 좋지 않아 협력사에 충분한 자금을 지원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며 “결국 돈 많은 기업이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유 위원장은 단호하게 “오해”라고 말했다.

“동반성장지수 평가가 자금 일변도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데, 실제 자금평가 항목의 비중은 전체에서 25% 수준에 그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 위원장은 “실적이 나쁜 기업은 자금지원 규모가 적어 충실도 점수가 낮을 수 있지만 이를 제대로 이행만 하면 이행도 점수에선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공생발전’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탄생한 게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일각에선 “차기 정부에서는 동반성장위원회가 폐지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에 슬쩍 물어봤다.

“사회 일부에서 그런 우려와 걱정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에서도 동반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지난해 상생법을 개정해 동반성장위원회 설치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불균형과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거예요. 그렇기에 현 정부뿐만 아니라 차기 정부에서도 동반성장 외에는 해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기 정부에서 동반성장을 다른 단어로 대체할지는 모르겠지만, 더불어 사는 정신과 가치는 더욱 강조되면 강조되지 약화되지는 않을 거예요.”

그는 “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은 차기 정부에서 더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골목상권 보호, 배려와 타협으로 해법 찾아야”

이야기가 이른바 ‘골목상권 보호’로 이어졌다.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강행된 대형마트 영업 규제를 놓고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업 동반성장 모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형마트 영업 규제에 대해 유 위원장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얼마 전에 전주에 갔다왔어요. 전주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를 통해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제일 먼저 시행한 곳이거든요. 골목상권과 재래시장 상인들은 효과를 기대하면서 무척 좋아하더군요. 재래시장 상인들 얘기를 들어보니 대형마트 강제휴무 이후 시장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유모차를 끌고 시장에 장을 보러 오는 젊은이들이 생겨났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월 2회 문을 닫아야 하는 쪽에서는 그만큼 걱정이 많더군요. 노동계에서도 일요일에 일하는 비정규직들이 일을 못하게 됐다고 오히려 걱정을 하더라구요. 어찌됐든 대형마트 영업규제 이후 시장 매출의 플러스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고용 효과는 어떤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보고 평가해야 할 것 같아요. 규제와 강제성을 띤 방식보다는 서로가 상생하는 해법이 나와야 하지 않나 싶어요. 대형마트들도 지역의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봉사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돈벌이도 중요하지만 대형마트 코너에 지역의 소상인들도 점포를 열 수 있도록 공간을 배려해준다든지 하는 노력도 필요해요. 나만 독식하자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해 나누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중소기업중앙회와 함께 연구를 하고 있는 사이에 정치권이 한 발 더 나아가 대형마트 문을 닫고 안 닫는 이분법으로 갈라버렸어요. 어떤 제도나 조치에 대한 경제적인 반응과 시장의 반응 등 득실을 면밀히 계산해야 하는데, 다소 성급하게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다보니까 이번에 법원에서 절차상 문제를 지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는 이 같은 자신의 말이 자칫 “대형마트 영업 규제를 동반성장위원회는 반대한다”는 것으로 비쳐질까봐 걱정이 됐는지, “대형마트 영업 규제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런 정책은 동반성장위원회를 거쳐 보다 정교하고 신중히 결정을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말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 위원장은 “골목상권과 친서민상권이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 위원회도 노력할 것”이라며 “올 하반기 실시하려는 서비스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도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과 중소상공인들이 서로 시장에서의 역할을 잘 조정할 수 있도록 중간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대기업, 이젠 주위도 둘러봐야”

지금은 동반성장위원장으로서 대기업을 상대로 ‘악역(?)’을 맡는 경우도 있지만, 유 위원장은 지난 3월까지만 해도 포스코 이사회 의장을 지냈을 만큼 대기업 현실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경제학자로 통했다. 그런 그에게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反)대기업 정서’를 화두로 던져봤다.

“우리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이 고생하든 말든 방치하고 폭리만 취하는 게 아니냐고 오해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 거 같습니다. 이제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발전해온 데에 대기업의 기여를 무시하면 안 돼요. 다만 그동안 앞만 보고 달리면서 스피디하게 세계시장을 뚫고 들어가 세계 챔피언까지 됐는데, 발전 일변도로 압축성장을 하다보니까 주위를 챙기면서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없었던 거죠. 그러다보니 ‘반대기업 정서’가 싹트고, ‘동반성장’이란 용어가 나오고 그랬던 겁니다. 두 차례의 금융위기가 좋은 계기가 된 거 같아요. 서로를 돌아보고 좀 더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는 걸 생각할 때가 됐다고 봅니다. 세계가 그렇게 가고 있잖아요. 이젠 우리 대기업들도 이런 부분에 많은 관심을 쏟는 것 같아요. 사회적 기업 육성에 힘과 정성을 쏟는 기업도 많아졌고, 1·2차 협력사들을 직접 순방하며 애로사항을 듣는 최고경영자(CEO)들도 자주 보게 됩니다. 내가 갑이고 당신은 을이라는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돕고 살자는 생각을 가진 CEO들이 많아 놀란 적도 있어요. 이 때문에 대기업들을 무조건 백안시하거나 이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여기는 데 대해선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요즘엔 많이 달라졌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동반성장위원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어떻게 윈윈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줄지 그 점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유 위원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를 살피면서 더불어 발전하기 위해선 대기업 오너나 CEO들의 인식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 CEO를 만난 자리에서 “말로만 동반성장을 강조하지 말고, 임직원들은 승진에 관심이 많으니까, 제도적으로 인사고과 표에 동반성장을 위한 기여도를 평가하는 항목을 넣어보라”고 권했던 경험을 전하면서 “대부분 CEO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선진국 도약의 힘, ‘동반성장’에서 찾아야”

화제가 최근 확산되고 있는 유럽발 재정위기로 이어졌다. 미국과 중국의 경기둔화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경제위기의 후폭풍이 한국경제를 강타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제일 걱정되는 부분은 유로존에서 불어닥칠지 모르는 쓰나미예요. 우리는 소규모 개방경제이기에 유럽발 경제불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거든요. 유로존의 최대 약점은 재정적자이고, 금융관리를 방만하게 잘못해왔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걸 반면교사로 삼아서 재정을 튼튼히 하고 금융분야 관리에 더욱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금융감독을 더욱 세밀히 하고, 안전망도 보다 촘촘히 짜서 우리 금융기관들이 유럽발 쓰나미로 피해 보는 일이 없도록 대비해야 해요.”

최근 경제양극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데 동반성장위원회 수장으로서 경제양극화 해소를 위해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경제양극화를 완화하려면 일자리 창출이 제일 급선무라고 봅니다. 소외계층을 지원한다는 명목 아래 인기영합적으로 돈만 풀어서 막 도와주는 건 해법이 될 수 없어요. 결국 경제적 약자층을 일터로 자꾸 끌어내는 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 길이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양극화를 다소나마 완화해줄 수 있는 방법이에요. 요즘 기업들이 고졸자를 많이 채용한다고 하는데 무척 반가운 소식입니다. 보다 많은 이들이 일터로 나올 수 있도록 사회적기업을 많이 만드는 것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어요. 어떤 기업은 사회적기업에 2500억 원을 투입했다고 하던데,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무척 의미 있는 노력이라고 평가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 위원장은 한국경제의 희망을 어디에서 느끼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전적으로 빨리 하려는 DNA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이 내재돼 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인적자원 또한 매우 뛰어납니다. 또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닫힌 경제’가 아니라 ‘열린 경제’를 표방하면서 과감하게 국제화를 해왔다는 점입니다. 세계시장에서 경쟁을 하다보니 글로벌 경쟁력이 생긴 것 같아요. 우리처럼 자유무역협정(FTA)을 선도적으로 체결하고 있는 나라는 없어요. 이처럼 도전적인 DNA와 탄탄한 인적 자원, 또 열린 경제 속에서 다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보니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힘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숱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그 위기를 기회 삼아 재도약할 수 있었던 비결도 이런 힘이 바탕이 됐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는 “한국경제의 잠재력을 감안하면 이번 유럽발 재정위기도 훌륭히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동반성장 문화가 산업계 전반에 착근돼 경제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동반성장은 이제 우리 모두의 시대적 과제지만, 각계각층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어려운 일이에요. 그렇지만 동반성장을 이유로 희생을 강요하기보다는 소통과 사회적 합의정신으로 동반성장을 이끌어나갈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 최대한 기업현장을 찾아가 기업인들을 만나고, 여러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다소의 이해관계 충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서로 힘을 합해 지혜를 짜낸다면 동반성장을 위한 ‘최대공약수’가 나오리라 확신합니다.”

유 위원장은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처럼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동반성장’ 속에서 그 힘을 얻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 김병직 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 bj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