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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권/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소장

일본 정치권이 소비세 인상안에 전격 합의했다. 현재 5%인 소비세율을 2015년까지 10%로 인상하는 안이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로 규모 면에서 심각한 수준이다. 유럽 재정위기의 근원지인 그리스의 국가부채율이 150% 수준임을 볼 때, 비록 일본 국채의 대부분은 국내 수요로 충당되지만, 그 규모는 안심할 수준이 아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포퓰리즘 복지정책과 무분별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있었다. 특히, 포퓰리즘 복지정책은 일본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민주주의 실패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영역이었다. 집권당인 민주당의 핵심 선거공약을 보면, 세금은 인상하지 않고, 복지를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국민에게 월 100만 원 수준의 최저연금을 보장한다는 최저보장연금제는 포퓰리즘 정책의 극치를 이룬다.

일본 민주주의 실패의 핵심은 복지는 확대하는 데 세금은 인상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민에 대한 무료(無料)복지의 혜택을 확대해주면서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정치상품은 정권 잡기에는 가장 좋은 전략인 셈이다. 포퓰리즘 정책으로 정권을 잡은 집권당은 정치상품을 집권 정책으로 현실화할 수 없다. 몇 년 동안의 집권 기간에 재정(財政) 적자를 미래세대로 넘길 수 있을 정도의 국가부채 수준이면 국민을 속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같은 국채 규모에서 세금 인상은 필연적이다.

일본의 법인세와 소득세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고, 개방화 시대에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결국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소비세를 올릴 수밖에 없다. 소비세 인상은 세수(稅收) 확보 차원에선 효과적이지만, 정치인 입장에선 가장 어려운 정책안이다. 소비세 부담은 소득이 낮을수록 세 부담이 높은 역진적 구조이고, 전체 국민에게 파급효과가 나타나므로, 정치 지지를 생각할 때 가장 위험성이 큰 세목(稅目)이다.

그동안의 정치 환경을 볼 때 일본의 소비세 인상 합의는 획기적인 사건이다. 미래를 위한 정치권의 선택이란 칭찬도 있지만, 일본의 재정 건전성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일본의 민간 연구단체인 21세기정책연구소는, 소비세율을 10%로 인상하더라도 추가적으로 포퓰리즘 복지 지출을 삭감하지 않을 경우 2050년엔 국가부채율이 600%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는 소비세 인상과 함께 복지 지출 개혁이 필연적으로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도 지난 4·11 총선에서 무상(無償)복지를 경쟁한 수준이었고, 연말 대선을 앞두고 여야(與野) 모두 무상복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무상복지는 재정적자를 낳고, 국가부채를 악화시킨다. 한국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무난하게 극복한 국가이며, 그 성공 배경에는 재정 건전성이 있었다. 유럽발(發) 재정위기로 한국경제의 앞날도 어두운데, 이를 막을 수 있는 방패로는 재정정책이 유일하다. 그래서 재정 건전성 문제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 게임으로 무상복지 확대를 경쟁하는 정치권 분위기를 보면, 우리의 재정건전성도 무너질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세계 경제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없어지면,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인 한국의 경제 앞날은 불안해진다. 지금은 법인세 인상안으로 감성적 여론이 집결되고 있지만, 국제경쟁의 현실에 조금만 눈뜨면, 법인세 인상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 결국 그 부담은 서민들이 세금을 더 내는 소비세 인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일본의 소비세 인상을 교훈삼아, 무상복지는 결국 서민의 세금 인상으로 귀결되는 고도의 정치기술임을 국민은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