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중랑구 망우산의 좁은 등산로에서 산악자전거가 등산객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나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지난 10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안산공원 등산로에는 주말을 맞아 가벼운 등산이나 산책을 하러 나온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주로 가족 단위로 나온 등산객들은 초여름의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시원한 흙길을 따라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었고 운동 삼아 밖으로 나온 나이 지긋한 인근 주민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손을 맞잡은 연인들의 모습도 더해져 평화로운 주말 오후의 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등산로를 내려오는 산악자전거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등산객들의 평화는 깨져 버렸다.

검은 헬멧에 검은 선글라스, 얼굴을 전부 가리는 마스크까지 착용한 자전거 동호인 3명이 몰고 온 산악자전거는 그 모습만으로도 위압감을 주었다. 천천히 산을 오르던 등산객들은 서둘러 길 가장자리로 몸을 피했고 산악자전거는 시속 20㎞ 정도의 빠른 속도로 등산객들 옆을 쌩하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흙먼지가 일었고 등산객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주말마다 등산로를 찾는다는 인근 주민 김모(63) 씨는 “매주 올 때마다 저렇게 위험천만하게 산에서 내려오는 자전거들을 본다”며 “등산로도 좁은데 저런 자전거를 왜 가져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있던 주부 박지연(여·37) 씨는 “등산객들이 있을 때는 속도를 좀 늦춰도 될 텐데 정도가 지나친 것 같다”고 혀를 찼다.

산 중턱을 넘어서자 산악자전거의 등장이 더 잦아졌다. 대부분의 산악자전거 운전자는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바이킹(biking)을 즐겼다.

하지만 일부 운전자는 등산객들 사이를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피해 가며 불안한 움직임을 보였다. 산악자전거 동호회 회원이라는 전모(34) 씨는 “돌이나 나무 등 길의 장애물들을 피해 가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산악자전거의 재미”라고 말했지만 그로 인해 등산객들의 불편은 커지고 있었다.

안산과 초안산, 수색산 등 서울 도심 인근의 야트막한 마을 산들이 산악자전거 이용자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산악자전거 동호인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서울 인근 지역에 산악자전거를 즐길 공간이 마땅치 않자 동호인들은 마을 산 탐방을 계획하며 산악자전거 루트를 개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산과 초안산 등은 흔히 ‘동네 뒷산’이라고 불리는 해발 100~300m의 낮은 산이다. 산세가 험하지 않고 녹음이 잘 우거져 있어 가족 단위 산책객들과 주민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고, 특히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에게는 나들이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산 인근에 사는 노인들도 운동 삼아 오르기 적당한 경사이기 때문에 이용이 잦아 각 구청에서는 산에 산책로를 구비해 주민들의 휴식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이 산들은 산악자전거 이용자에게도 인기가 좋다. 북한산과 인왕산 같은 높은 산들은 경사가 급하고 계단이 많아 산악자전거를 타기 부담스럽지만 안산 등에선 쉽게 산악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다. 연습 공간으로 제격인 셈이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안산의 경우 주말이면 500~600명의 등산객이 산을 오르는데 최근에는 산악자전거도 100여 대 정도가 오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도심 주변 등산로와 산책로를 이용하는 산악자전거 운전자가 늘면서 등산객들의 불편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좁은 등산로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자전거를 피하기 위해 일반 등산객들이 수시로 길을 비켜서야 하고 서로 뒤엉켜 사고가 날 뻔한 위험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각 마을 산의 해당 구청으로 ‘산악자전거 이용을 막아 달라’는 민원이 속출하고 있다.

안산이 위치한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산악자전거와 관련된 주민 민원이 한 달에 2~3건 정도 있다”면서 “‘왜 산악자전거를 타면 안 되느냐’는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의 역(逆) 항의도 수시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초안산이 있는 노원구청 관계자도 “한 달에 한 번꼴로 산악자전거 이용을 금지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고 밝혔다.

등산객들로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각 구청들은 최근 ‘산책하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산악자전거의 출입을 금지합니다’라는 현수막을 거는 등 산악자전거의 출입을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현재 법적으로 산악자전거의 등산로 이용을 막을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56조’는 각종 등산 위반 규정을 명시하고 있는데 산악자전거는 해당 사항이 아니어서 자전거를 타고 등산로를 오르더라도 금지할 수 있는 수단이나 법령이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서울 도심 인근 마을 산에서는 매주 등산객들과 산악자전거의 아찔한 동거가 계속되고 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