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뜨거운 안녕’으로 1960년대 한국가요계를 뜨겁게 달궜던 가수 쟈니 리가 지난 14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서울 중구 충정로 문화일보사 사옥 인근을 거닐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별들이 다정히 손을 잡는 밤, 기어이 가신다면 헤어집시다. 아프게 마음 새긴 그 말 한마디 보내고 밤마다 눈물이 나도 남자답게 말하리라, 안녕이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이라고’

가요‘뜨거운 안녕’은 1966년 발표 당시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가요계를 뜨겁게 달궜다.

“음반은 나오자 마자 품절 사태를 빚으며 35만 장이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어요. 오늘날 ‘서태지’의 인기와 버금갔지요. 인기에 힘입어 트위스트 김 등과 함께 음악 영화 ‘청춘대학’에도 출연했습니다. ‘신필름’이 기획하고 신상옥 감독이 연출한 ‘청춘대학’도 빅히트를 기록했으니 당시 저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1970년대 남진·나훈아가 있었다면 1960년대에는 ‘뜨거운 안녕’의 쟈니 리가 ‘허무한 마음’의 정원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뭇 청춘들의 가슴을 울렸다. ‘뜨거운 안녕’으로 1960년대 한국가요계를 풍미했던 원로가수 쟈니 리(본명 이영길·74)를 지난 14일 만났다. 이날 오후 문화일보를 찾은 쟈니 리는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힘을 잃지 않은 목소리로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 ‘뜨거운 안녕’에 얽힌 갖가지 사연, 가요계 뒷얘기 등 파란만장한 삶과 50여 년의 가요인생을 솔직담백하게 털어놨다.

―지난 2010년 새 노래 ‘걱정마’를 발표했는데, 일흔 살이 넘어 새 노래를 낸 것은 대단한 일 아닌가요.

“나이를 그리 많이 먹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돈을 모아 노후 대책을 하겠다는 생각도 없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고 있어요. 호주머니에 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어린아이처럼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요. 동심으로 사는 거죠. 1966년 ‘뜨거운 안녕’을 Em로 불렀는데, 지금도 Em로 부릅니다. 제가 사는 서울 동부이촌동의 한강변에서 발성 연습도 많이 하지요. 그래서인지 저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일흔 살을 넘겨 새 노래를 발표한 것이 저에겐 남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큰일’이 아닌 게죠. 항상 음악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습니다.”

―어릴 적 숱한 고생을 하셨는데.

“어머니가 평양의 유명한 기생이었어요. 당시 기생은 격이 있었습니다. 제 성(姓)도 어머니 성을 따른 것입니다. 일을 해야 하는 어머니는 돈을 주고 이집 저집에 저를 맡겨놓았어요. 남의 집에 있다보니 학대와 설움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맡겨진 집의 제 또래에게 매를 맞기도 하고 마구간에서 잠을 자기도 했지요. 그러던 차에 어머니가 평안남도 진남포에 있는 외갓집에 가자고 했습니다. 진남포에서 초등학교 3학년으로 들어가 5학년 때까지 다녔지요. 평소 냉면을 좋아하는데, 어머니가 나중에 냉면을 함께 먹자며 나가신 지 닷새만에 폭격이 시작됐어요. 더이상 있을 수 없어 피란민들을 따라 1951년 홀로 부산으로 떠났지요. 한국전쟁으로 본의 아니게 ‘전쟁고아’가 된 거죠. 부산 광안리 피란민수용소에 있다가 6개월 뒤 양아버지인 덴마크 출신 미국인 랙스 무섬 씨를 만났어요. 양아버지는 부산의 항만 총책임자로 귀엽게 생긴 저를 무척 예뻐하셨어요.”

―본래 노래에 소질이 있었나요.

“기생인 어머니와 연극배우였던 아버지의 피를 받아서인지 어려서부터 노래에 재능이 있었어요. 14세때부터 노래를 불렀고, 정식으로 연예계에 나온 것은 1958년 ‘쇼보트’를 통해서였습니다. 춤도 잘 춰, 노래하면서 춤을 추면 클럽에 있던 미군들이 무척 좋아했습니다.”

―본명이 이영길인데 ‘쟈니 리’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긴 건가요.

“양아버지가 지어주셨어요. 저는 바이브레이션과 강한 액센트로 노래했습니다. 양아버지는 이런 제가 당시 미국의 인기 가수 쟈니 메티슨과 닮았다며 ‘쟈니 리’라는 이름을 지어 주신거죠.”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는 없나요.

“정확한 연도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산의 고위 인사가 초대해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분이 술에 취해 통행증을 마련해 주지 못했어요. 당시는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 한 밤중에 이동하려면 통행증이 있어야 했고, 없을 경우 경찰과 헌병의 검문을 받던 상황이었어요. 검문에 불응하면 총을 쏘기도 했지요. 우리를 태운 버스가 검문에 걸렸는데, 경찰이 대표와 남자 몇 명 나오라고 하더군요. 먼저 트위스트 김이 나갔지요. 그런데 경찰이 대뜸 무식한 경찰이지만 ‘트’가가 어디 있느냐며 버럭 화를 내더군요. 그 다음으로 제가 나갔는데, 경찰은 더 화를 냈어요. 대한민국에 ‘쟈’가도 있느냐면서요.”

―1960년대 극장쇼 무대는 정장을 입고 부동자세로 노래를 불렀던 분위기였습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나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당시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운동화를 신고 청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나가니까 선배들이 노발대발했어요. ‘연예계를 망치는 놈’이라며 야단을 쳤지요.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청바지를 입고 ‘뜨거운 안녕’을 열창하는 저의 모습에, 젊은 사람들은 이런 가수는 처음 봤다며 뜨거운 성원을 보냈습니다. 제가 노래를 부르고 나면 워낙 앙코르 요청이 많아 이미자 등 당시 인기 가수들 중 어느 누구도 제 뒤를 이어 노래를 부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오늘날의 ‘서태지’와 같은 존재였던 셈이지요. 여학생들은 저의 극장쇼 공연을 보기 위해 사복으로 갈아입고 들어왔다가 퇴학을 맞기도 했어요.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선 것은 사실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인데, 빅히트를 쳤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귀공자 타입의 외모로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는데.

“어디 가서 고생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제 얼굴이 예쁘고 깨끗했으니까요. 여자들은 제가 좋아서 울기도 했습니다.”

―‘뜨거운 안녕’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인천에서 한 연인의 자살 사건이 터졌는데, ‘뜨거운 안녕’ 가사를 적어 놓고 동반 자살을 해 당시 큰 화제가 됐었습니다.”

―노래방에서 젊은이들이 ‘뜨거운 안녕’을 부르는 것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젊은이들이 ‘뜨거운 안녕’을 많이 부르는 것을 보면 기쁘기도 하고 영광스럽기도 합니다. 노래방이 생긴 초창기만 해도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구인 줄 아느냐고 물으면 사람마다 남진, 나훈아, 이미자, 정훈이, 임희숙, 패티김 등 각양각색으로 말하곤 했어요. 이들도 모두 ‘뜨거운 안녕’을 불렀기 때문이지요. 1995년에 ‘가요무대’에 서서 ‘뜨거운 안녕’을 부르고 각종 토크쇼에 출연하다 보니 그 뒤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제 노래인 줄 알더군요.”

―1970년대 중반 화려했던 연예계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훌쩍 떠난 이유가 궁금한데요.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깝던 시절이라 매니저가 각종 쇼무대 출연을 강요했고, 출연하기 싫다고 하면 ‘죽인다’고 협박했어요. 출연료도 못받고 협박에 시달린 것이지요. 제가 한국에서 30년 연예생활을 했다면 12~13년은 돈을 받지 못했다고 할 수 있어요. 공연이 끝나면 술자리에 끌고가고, 술값도 제가 내도록 했어요. 오죽했으면 누가 연예계 얘기를 꺼내면 연예계의 ‘연’자도 꺼내지 말라고 할 정도로 정나미가 떨어졌지요. 희극 배우였던 김희갑 선배가 제 첫 결혼때 주례를 섰던 분이에요. 그런 김희갑 선배가 영화 출연을 거절하자 매니저들에게 맞아 갈비뼈가 부러졌던 시절이었어요. 1970년대 초 동양방송의 간판 프로그램이자 우리나라 쇼프로그램의 대명사였던 ‘쇼쇼쇼’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은 황정태 PD가 전속계약을 하자고 했지요. 하지만 매니저가 지방 쇼무대에 계약이 됐다면서 전속계약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출연료도 주지 않고 공갈·협박을 하기 일쑤였어요. 연예계 생활에 환멸을 느껴, 결국 미국으로 가게 된 것이지요. 미국에서 다른 것을 해보려고 했는데, 미국에서도 음악 속에서 살았으니 음악만은 뗄 수 없는 모양이에요.”

―누가 곡을 준다면 지금이라도 노래를 부르실 의향이 있나요.

“그럼요. 지금도 무대에선 꼿꼿하게 서서 노래합니다. 스테이지 매너도 여전히 좋아요. 대학로에 위치한 소극장에서 몇 달 전에 공연을 했는데, 24곡을 쉬지 않고 불렀습니다.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힘이 솟아요.”

―1960년대 최고의 인기가수에서 부침을 겪었는데, 인기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노래가 히트되는 것은 순간적인 것 같아요. 애초 ‘뜨거운 안녕’이 히트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당시로는 긴 곡이었기 때문에 반응이 클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거죠. 인기가 있을 땐 이사람 저사람 찾아와서 ‘나 알지’하면서 ‘밥 먹자’‘인터뷰하자’는 등 많은 사람들이 몰렸지요. 하지만 인기가 식자 사람들의 태도는 돌변했어요. 아예 저를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그때 인생이란, 인기란 이처럼 허무한 것이구나 하고 느꼈지요.

―선생님의 인생에서 노래와 ‘가수’란 어떤 것인지.

“슬픈 노래를 부르면 청중들에게 제 인생을 말해주는 것 같아요. 또 사랑을 주제로 한 내용이면 사랑했던 제 인생을, 인생을 주제로 한 가사면 제가 걸어왔던 제 인생을 표현하는 것 같아 어떤 때는 노래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연기자도 표현력이 있다고 하지만 가수는 표현을 관객들에게 던져줍니다. 가수는 노래로 기억됩니다. 이름은 세월이 많이 흐르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히트송은 영원히 남지요. 객석에 노래를 듣는 사람이 단 한 명이 있든, 만 명이 있든 똑같은 자세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수는 은퇴라는 게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목소리가 안나올 때가 자동적인 은퇴지, 그 전까지 은퇴는 없는 것이지요. 그때까지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골프를 즐겨요. 한달에 두 번 정도 필드에 나갑니다. 주로 가수에서 목사로 변신한 윤항기 씨와 많이 칩니다. 아령이나 역기를 이용하는 근력운동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고 있어요.”

인터뷰 = 김도연 차장(문화부)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