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귀국한 박희태 국회의장이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모르는 일’이라며 검찰수사에 따라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박희태 국회의장과 검찰 간의 정면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 주변에서는 박 의장의 ‘자진사퇴론’까지 흘러나왔지만 이날 박 의장은 모르는 일이라고 밝히면서 사실상 돈봉투 전달 과정에 연루된 혐의를 부인했다. 이에 따라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검찰과 이를 방어하려는 박 의장과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검찰은 박 의장이 검찰 출신인 데다 체득화한 법률적 지식과 오래 정치권에 몸담아온 경험 등을 통해 여러 경우의 수를 가정해 이날 발언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워낙 큰데다 박 의장이 이번 사건과 관련한 핵심 중의 핵심인물이라는 점을 의식해 2008년 당권에 도전했던 박 의장과 돈봉투 살포의 인과관계를 철저히 규명하겠다는 다짐인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검찰에 따르면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이상호)는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박희태 당대표 후보 캠프에서 일했던 관계자들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차근차근 불러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검찰 관계자는 “캠프 관계자들을 단계적으로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박 의장에 대한 소환 조사는 설연휴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검찰은 고승덕 의원 측이 박 의장 측으로부터 받은 돈을 되돌려준 인사로 지목한 고명진씨 외에 나머지 캠프 관계자들은 아직 부르지 않고 있다. 고씨 이후 우선 소환 대상으로는 캠프에서 공보와 메시지를 담당했던 이봉건(50)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 재정을 맡았던 조정만(51)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 회계를 다룬 함모(여·38) 국회의장 보좌관 등이 거론된다. 이후 검찰의 칼날은 김효재(60)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거쳐 박 의장을 직접 겨눌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박 의장 등 ‘윗선’을 직접 조사하기 위해서는 캠프 관계자들의 진술이 확보돼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혐의사실을 뒷받침할 뚜렷한 진술을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박 의장이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더라도 캠프 관계자들을 소환해 의미 있는 진술을 듣지 않고서는 박 의장을 소환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이 때문에 e메일과 캠프 회계장부 분석, 계좌 추적 등을 통한 물증 확보에 주력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단서는 잡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 의원 측이 300만원이 H은행 띠지로 묶여 있었다고 진술하긴 했지만 거액이 아닌 소액의 현금이 고 의원을 비롯해 여러명에게 뿌려진 것으로 보여 추적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눈앞에 4·11 총선거가 있는 만큼 시간도 검찰 편은 아니다.

검찰이 기대를 걸고 있는 부분은 안병용(54) 한나라당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 구속과 함께 비교적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는 원외 수사다. 검찰은 안 위원장의 자택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 e메일 조회 등을 통해 일부 단서는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수진기자 sujininva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