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미국 텍사스주립대 MD 앤더슨 암센터 소속 뇌종양 진료팀이 ‘브레인스위트’수술실에서 한 뇌종양 환자에 대해 화면을 보며 수술하고 있다. MD 앤더슨 암센터 제공

지난해 11월14일 점심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위치한 MD 앤더슨 암센터 메인 빌딩 지하 1층 홀. 30대로 보이는 한 여성 자원봉사자가 홀 중앙에 놓인 피아노로 감미로운 연주를 하고 있었다. 피아노에서 좀 떨어진 분수대에서 치솟는 형형색색의 물줄기와 음악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암 환자들이 휠체어를 타고 와 평화로운 표정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홀 벽면에는 ‘Here we grow again(이곳에서 우리는 다시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홀 한쪽에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꽃집이 보였다. 암센터를 안내하던 프로그램 매니저 스콧 머빌씨는 “꽃을 팔아 나오는 수익금을 소아 암 환자들의 스키 캠프 등에 활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메인 빌딩과 이어진 입원병동 17층. 빈 병실로 이동하는데 암 환자를 위해 의료진이 모여 의논하는 회의실(conference room)이 보였다. 1인실은 한국 병원의 1인실과 달리 13.2㎡(4평) 정도로 아주 소박했다. 병동 800병상의 크기가 모두 같다. 환자 가족을 위한 긴 간이의자가 침대 옆에 놓여 있고, 병실 한쪽의 조그만 TV와 아담한 크기의 화장실 정도가 다였다.

특이한 점은 병실 밖에 있는 간호사가 환자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작은 ‘프라이버시 창’이 병실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창 안쪽에는 환자들이 언제든 편하게 꺼내 쓸 수 있는 환자복과 소모품을 넣어 둔 사물함이 있었다. 환자의 사생활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간호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인 것이다.

MD 앤더슨 암센터는 1930년대 목화사업으로 큰돈을 번 MD 앤더슨의 기부와 텍사스주 의회의 노력으로 1941년 출범했다. 지난해 70주년을 맞은 MD 앤더슨 암센터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병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 9년 동안 7번이나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 암 분야 최고의 병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0년 10만5000여명의 암 환자가 이곳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이 중 3분의 1은 신규 환자다. MD 앤더슨 암센터라는 이름만 보고 찾아오는 세계 각지의 외국인 환자가 전체의 30%에 달한다.

◆ 암 환자에 대한 최상의 서비스 = 메인 빌딩을 중심으로 모든 건물을 연결하는 스카이브리지에는 환자와 보호자를 실어 나르는 골프 카트 전동차가 다니고 있었다. 건물 여기저기를 다녀야 하는 환자들을 위해 고안해 낸 것이다. 건물 통로 곳곳에는 환자나 보호자, 방문객들이 자신이 있는 곳의 위치가 어디인지, 어떤 루트로 그곳까지 왔는지 알려 주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자동 안내 맵이 설치돼 있다.

하루에 100만원이나 하는 비싼 병실료를 감당하기 힘든 환자를 위해 환자들이 묵고 병원에 올 수 있는 ‘로터리 하우스’도 병원과 연결돼 있다. 암 예방과 진단을 위한 ‘둔칸 빌딩’, 연구원들이 자료를 찾아보는 ‘리서치 메디컬 도서관’, 방사선 치료를 받는 양성자센터 등도 둘러봤다. 암 환자들이 모든 서비스를 하나의 복합 건물 안에서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MD 앤더슨 암센터는 암 환자가 방문하면 모든 검사를 마친 뒤 종양내과 등 여러 과의 교수들이 통합 진료를 통해 원스톱 치료 방침을 세운다. 등록이 좀 늦더라도 중한 암 환자는 신속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생명 존중 사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의사와 간호사 등 모든 직원들이 최고의 친절과 서비스 정신으로 환자를 대하는 게 이 병원의 근본 목표이기도 하다.

여기에 암을 극복한 환자와 일반인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서비스도 이 병원의 자랑이다. 한 해 1200명의 자원봉사자가 19만5000시간을 봉사하고 있다고 병원 측은 밝혔다.

보험이 없는 저소득층 환자를 위한 자선 진료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돈이 없어 암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2010년 3억2600만달러(약 3762억원)에 달하는 자선 진료가 이뤄졌다. 환자 10명 중 한 명꼴이다.

◆ 암 연구 지원 세계 1위 = MD 앤더슨 암센터 뉴스레터인 ‘메신저(Messenger)’ 10월호에 따르면 텍사스주립대학 이사회는 2010년 9월 로널드 드피노 박사를 원장으로 임명하면서 기초연구 성과를 효과적인 임상연구로 전환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주문했다고 한다. 분자생물학, 유전학, 면역학 등 12개의 전문화된 암 연구 프로그램에 대한 연방정부 및 민간기업 보조금과 국립암연구소(NCI) 등에서 지원된 총 연구비가 2010년 5억4703만달러(약 6321억원)에 달했다. 단연 미국 내 1위이자 세계 1위다.

폐암 및 두경부암 연구와 진료를 겸하고 있는 에드워드 김 종양내과 교수는 “MD 앤더슨 암센터는 임상과 연구 파트가 팀워크를 이뤄 수많은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며 “환자 치료를 위한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연구 업적을 많이 쌓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나 연구를 많이 하느냐보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느냐가 연구 능력의 기준”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MD 앤더슨 암센터는 새로운 암 치료법 개발을 위한 임상연구가 2010년 1009건에 달했으며, 1만명 이상의 암 환자가 임상연구에 등록돼 있다. 전체 환자의 10%에 달하는 임상시험 등록 비율은 전 세계적으로 최대 규모다.

◆교육과 암 예방에도 주력 = MD 앤더슨 암센터의 또 다른 경쟁력 중 하나가 열린 교육이다. 2010년 다양한 국가에서 7000명의 의사와 연구원, 간호사 등이 MD 앤더슨 암센터 전문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프로그램 매니저 머빌씨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암 환자 진료를 위한 교육을 통해 우리와 함께 암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전했다.

암 예방을 위한 다양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1년에 모두 3380만달러(약 309억원)가 암 예방 연구에 쓰이고 있다. 암 예방 센터(The Cancer Prevention Center)의 경우 일반인들에게 유전자와 나이, 성 등에 기반한 암 진단법, 암 위험 측정표, 개인 맞춤형 암 위험 감소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 텍사스 메디컬 센터(Texas Medical Center) = MD 앤더슨 암센터 등이 포함된 세계 최대 규모의 의료복합단지다. 314만㎡(95만여평) 면적에 텍사스의대와 텍사스심장연구소 등 총 49개의 의료기관이 입주해 있으며, 의사와 간호사, 연구자 등 2만명을 포함해 9만35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2010년 한 해 동안 600만여명의 환자가 이곳에서 치료를 받았다. 텍사스 메디컬 센터 전체 1년 예산이 수십조원이며, 연간 연구·개발 예산만 3조원대를 넘어서고 있다. 텍사스 메디컬 센터는 2014년까지 기반시설 확충과 미래 성장을 위해 70억달러(약 8조745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휴스턴 = 김충남기자 utopian21@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세계 최고의 암센터로 평가받는 MD 앤더슨 암센터 입구에서 바라본 암센터 메인 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