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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에서 황정(黃精·둥굴레)에 이어 정기신((精氣神)을 기르는 식물로 나오는 것이 석창포(石菖蒲)다. 그냥 창포라고도 하는데, 머리를 감는 데 쓰이는 꽃창포와는 다른 것이다. 석창포는 산골짜기 물이 많은 곳에서 자라는데, 특히 흐르는 물가의 돌 사이에서 다발로 모여 자란다. 그 모양이 울창하게 우거진 부들(포황·蒲黃) 같다고 하여 석창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창포(水菖蒲), 구절석창포라는 것도 있는데,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오로지 석창포만 약으로 쓴다고 하였다. 뿌리 한 토막에 아홉 개의 마디가 있는 게 좋은 것이며 뿌리가 땅 위로 올라와 푸르게 변한 부분은 쓰지 않는다.

음력 5월에서 12월 사이에 뿌리를 캐는데, 햇볕에 말린다. 처음 캤을 때는 속이 비어 있고 부드럽지만 말리고 나면 속이 단단해진다. 마디를 잘라 보면 가운데의 색깔은 붉고 씹어 보면 맵다.

석창포가 총명탕의 주요 재료라고 하여 머리를 좋게 한다는 말 때문에 석창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이는 상당한 근거가 있는 말이다. 근대 서양과학의 연구에서도 석창포는 기억력이나 학습 능력을 높이고 치매와 건망증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암에도 좋다는 보고가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석창포가 심장의 구멍을 열어 준다고 했는데, 이는 노폐물인 담(痰)이 심장의 구멍을 막으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심하면 쓰러지기까지 하므로 이를 막아 준다는 말이다. 또 석창포는 오장의 기를 보하고 눈이나 코, 귀, 입, 요도와 항문까지 그 작용을 원활하게 해 주며 총명하게 하면서 건망증도 없앤다고 하였다. 생 석창포를 찧거나 말린 석창포를 달여 머리를 감으면 비듬이 없어지고 피부에 바르면 아토피와 같은 가려움증, 관절의 통증, 입안이나 피부의 헌데도 좋은 효과가 있다.

잎과 꽃은 달여서 차로 먹으면 좋다. 잎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비빈 다음 말렸다가 쓰면 되고 꽃은 그냥 말렸다가 차로 마시면 된다.

단순히 머리를 좋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기신 모두를 좋게 하기 위해 석창포를 먹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석창포 뿌리를 캐서 쌀뜨물에 하룻밤 담갔다가 햇볕에 바싹 말린 다음 곱게 찧어 가루를 낸다. 찹쌀 죽에 졸인 꿀과 석창포 가루를 넣고 오자대의 환약을 만든다. 졸인 꿀이란, 따 온 꿀을 한 번 끓어오르게 하여 위에 뜨는 거품을 거둔 것을 말한다. ‘오자대’란 환약의 크기를 재는 단위인데, 벽오동의 씨앗만 한 크기를 말한다. 약 7㎜ 정도의 크기다.

‘동의보감’에는 찹쌀 죽과 꿀 등의 비율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이는 예를 들어 칼국수를 만들 때의 상황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한마디로 찹쌀 죽과 꿀은 밀가루를 반죽하는 물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찹쌀 죽과 꿀이 중심이 아니라 석창포 가루가 중심이다. 된 정도를 가늠해 찹쌀 죽으로 반죽하면서 꿀은 양념처럼 넣으면 된다. 물론 꿀이 좀 더 들어간다고 해서 약효에 큰 변화가 오지는 않는다. 마치 된장국을 끓일 때 호박이나 파를 좀 더 넣는다고 해서 된장국이 안 되는 건 아닌 것과 같다.

이렇게 만든 환약을 햇볕에 잘 말린다. 먹을 때는 술로 먹는데, 아침에는 서른 알, 저녁에는 스무 알을 먹는다. 이렇게 먹을 때 석창포는 정기신을 보하는 명약이 된다. 그냥 석창포를 삶아 먹는 경우도 있는데, 석창포는 막힌 것을 강하게 뚫어 주므로 오랫동안 먹으면 안 된다. 또한 평소 식은땀을 잘 흘리는 사람도 먹으면 안 된다. 그리고 반드시 ‘동의보감’에서 말한 방법대로 먹어야 한다.

＜석창포 술 만드는 법＞

생 석창포 뿌리를 짜서 낸 즙 다섯 말과 찹쌀 다섯 말로 지은 밥에 누룩 가루 다섯 근을 골고루 섞어 술 빚는 방법대로 담가 술이 익으면 맑게 거른다. 이 술을 오래 먹으면 신명이 통하고 오래 살 수 있다. 단, 아침저녁 소주잔으로 한 잔씩만 먹는다.

한의사, 들꽃피는요양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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