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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경희대 정경대 교수 경제학

우리나라가 무역 1조달러를 돌파했다. 올 들어 12월5일까지의 수출액이 5150억달러이고, 수출과 수입을 합한 교역 규모가 1조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한 것은 세계 9번째다. 이로써 한 해 수출액이 5000억달러를 넘어선 8번째 나라가 됐고, 미국 독일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9번째로 무역 1조달러가 넘는 나라가 됐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당시 수출 규모는 2200만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던 대한민국의 수출 규모는 1964년 1억, 1971년 10억, 1977년 100억, 1995년 1000억, 2004년 2000억, 2006년 3000억, 2008년 4000억달러로 급신장하며, 마침내 경제개발 반세기 만에 수출액이 5000배로 증가한 것이다. 정부 수립 당시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GNP)이 50달러밖에 되지 않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지금은 국내총생산(GDP) 세계 15위, 1인당 소득은 2만달러가 넘고, 자동차 생산 세계 5위, 반도체 매출액 세계 2위인 나라가 됐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경이적인 ‘경제 기적(經濟奇蹟)’을 이루게 된 것은 자유무역을 기초로 한 시장경제 덕분이다. 이것은 한국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출발했지만 사회주의를 택해 극도의 빈곤을 겪고 있는 북한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당시 한국보다 더 잘 살았던 미얀마(옛 버마)가 1961년 군사혁명 후 사회주의와 폐쇄경제를 채택한 결과 최빈국의 길을 걷고 있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 과정에서 자유무역의 덕을 어느 국가보다 많이 본 대한민국에서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반대가 극렬한 것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다.

더구나 세계 9번째로 ‘무역 1조달러 클럽’에 가입하게 된 것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술 및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수출에 매진해온 기업들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업들을 칭찬하고 격려하기보다는 기업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꼬투리를 잡아 죄인 취급하는 반(反)기업 정서가 팽배해 있다. 정치권은 경쟁적으로 기업과 기업가 때리기에 여념이 없고, 걸핏하면 국정감사를 핑계로 기업인들을 대거 증인으로 채택한다. 정부는 동반성장과 이익공유제를 부르짖으며 사업영역과 이익을 나누려 하고, 백화점 입점업체 수수료와 주유소 기름값을 내리라고 압박한다. 일부 언론은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반대 캠페인이나 계열사 간 거래에 대한 비판 기사들을 쏟아낸다. 이런 환경에서는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더욱 더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경제 개방과 기업가가 자유롭게 기업가의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누구와 하든 교역은 많으면 많을수록 서로가 이익이다. 따라서 성장잠재력이 큰 중남미,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 등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경제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 그뿐 아니라 기업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고, 기업의 활동을 가로막는 수많은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그래야 모험과 도전, 과감한 투자, 혁신과 창의적인 활동으로 한국경제가 다시 한 번 비상할 수 있다.

한편 외부로부터 받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경험한 것처럼 한국경제는 외부 충격에 매우 민감하다. 지금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인한 세계경제의 불안요소가 가시지 않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 커다란 위협 요소다.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영향을 덜 받기 위해서는 환율이 급격하게 변동하지 않는 장치를 마련해야 하고, 가격 경쟁력보다는 품질과 기술 경쟁력에 기반을 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