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근거를 갖추지 못한 음모론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여과없이 확산되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같은 편’끼리만 소통하는 문화, 합리적 토의를 위한 공론장의 붕괴, 정부기관들의 소통능력 부재 등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외국의 경우에도 다양한 음모론이 있지만 사회 여론을 좌지우지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하고, 감정적 주장보다는 ‘팩트(사실)’와 논리적 해석이 우선하는 공론장의 자정능력 회복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친한 사람들끼리만 대화하며 음모론 확산 = 한규섭(언론정보학) 서울대 교수는 “이념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소통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전혀 소통하지 않는다”며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근거없는 이야기를 해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확산시키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택수(사회학) 고려대 교수는 “특히 SNS의 경우 친한 사람끼리 ‘채팅’하듯 글을 올리는 환경이 돼 있다 보니 사실확인도 없이 글을 올리고 퍼나르게 된다”며 “술자리 대화 수준의 이야기를 아무 생각 없이 올리곤 하는데, SNS는 개인 미디어인 동시에 공공 미디어 같은 파괴력을 가진 매체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공론장 붕괴로 자정능력 잃어 = 윤평중(철학) 한신대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는 공식적인 주체가 아무런 민주적 권위를 갖지 못하는 공론장의 붕괴·진공상태라고 할 수 있다”며 “공론 영역이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니까 음모론이 파고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외국에도 음모론은 많지만 언론기관 같은 표준적 공론장이 신뢰를 받으면서 자정기능이 작동하기 때문에 진지한 이슈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채규만(심리학) 성신여대 교수도 “음모론은 불신과 불안이 많은 곳, 합리적 판단보다 감정적 흥분이 앞서는 상황에서 발생한다”며 “미국도 음모론이 많은 나라지만 국민의식 자체가 합리성이나 상식을 벗어나는 주장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자정능력을 강조했다.

◆정부 책임 무시 못해 = 황상민(심리학) 연세대 교수는 “정부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일반 대중과 긴밀하게 교류했다면 음모론 확산은 없었을 것”이라며 “정부기관이 신뢰받지 못해 음모론이 횡행하는 만큼 제대로 된 쌍방향 소통을 위해 정보를 대폭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식 소비자는 늘어나는데 지식을 생산하는 능력을 갖춘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대학진학률 80%라는 왜곡된 교육시스템 속에 지식인의 권위가 사라지고, 사회 전반의 논리적 사고력이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규제는 해결책 될 수 없어 = 한규섭 교수는 “과거 ‘미네르바 사건’의 예에서 보듯 규제를 하면 오히려 ‘진짜로 뭔가 있는 것 아니냐’ 하면서 음모론의 공간을 신성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윤평중 교수도 “SNS 통제 같은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실현 가능하지도 않은 발상”이라며 “시민의 자기성찰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성훈·김병채기자 tarant@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