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하 단칸방에 사는 독거노인 김모(87) 할머니가 약을 먹기 위해 힘겹게 일어나고 있다. 신창섭기자 bluesky@munhwa.com

“아들도 저 먹고살려고 발버둥 치는데, 어미가 돼서 내 몸 아프다고 어떻게 손을 벌리나. 나 도와준다는 사람 어디 없을까?”

지난 8일 오후 5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다섯 평(16.5㎡) 남짓한 다세대주택 지하 단칸방. 김모(87) 할머니는 방 한쪽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워 부은 다리를 힘겹게 주물렀다. 사흘 전에는 온몸이 퉁퉁 부어 병원에 실려 갔지만 돌보는 이도, 말을 나눌 친지도 없다. 방에는 큰 글씨로 ‘아침’, ‘점심’, ‘저녁’, ‘자기 전’이라고 적힌 여러 개의 약봉지가 놓여 있다. 1.5ℓ 생수 한 통과 돋보기,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이 할머니의 머리맡을 지키고 있었다. 자주 쓰지 않는 듯한 전화기에는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았다.

할머니는 외출을 언제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사흘 전에 병원 간 것을 외출이라고 해야 할까. 그걸 빼면 아마 지난여름이 마지막인 것 같은데….” 할머니의 하루 일과는 가만히 누워 있거나 간혹 지팡이를 짚고 방 안을 빙빙 도는 것으로 채워진다. 11월도 중순을 향하고 있지만 달력은 여전히 10월을 가리켰다.

할머니는 아들이 셋이지만 15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부터는 혼자 살고 있다. 한 달 전부터 온몸이 부어오르고 마디마디가 쑤시는 통증에 시달렸다. 하혈 때문에 기어가다시피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위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도 있다. 하지만 따로 사는 아들에게 ‘병원에 데려다 달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비정규직인 아들(65)의 한 달 수입은 고작 80여만원. 며느리도 자판 행상을 하며 생활비를 번다. 아들 내외도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해외로 돈 벌러 간다’는 두 아들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사흘 전 늦은 밤에 응급실에 실려 간 할머니의 곁을 지킨 사람도 아들이 아닌 ‘노인돌보미’ 박모(여·56)씨였다. 병원비는 며칠 새 300만원을 훌쩍 넘겼다. 어쩔 수 없이 퇴원한 할머니는 “빚을 내서라도 병 좀 고쳐 달라”고 박씨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재산은 남편이 남겨 놓은 단칸방 전세금 2000만원이 전부다. 부양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할머니는 기초노령연금도,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도 되지 못했다.

독거노인 100만명 시대. 전체 인구의 11%가 65세 이상인 ‘고령화사회’, 한국의 현주소다. 오는 2026년이면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정도로 노령화 속도는 빨라지고 있지만 저소득층 사이에선 부양 기능이 무너져 가고 있다. 늙은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효의 실천이자 자식의 의무라는 생각은 여전하다고 해도 먹고사는 문제가 이를 외면하게 한다. 자녀가 있어도 국가의 보살핌에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노인이 점차 늘어나는 것이다. 김 할머니처럼 생활고와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부양자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국가의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동네에서 하루 종일 주운 폐지를 고물상에 팔아 생활비로 쓰는 박모(여·84) 할머니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명절 때조차 만나기 힘들다는 두 아들이 매달 넣어 주는 용돈은 10만원 정도. 여기에 기초노령연금 9만원과 폐지를 팔아 버는 5만원이 할머니의 한 달 생활비다. 세 평 크기 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살고 있는 할머니는 “수도세, 전기세 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어 밥은 근처 노인종합복지관이나 성당에서 해결하고 있다”며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는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시력이 날로 떨어지고 있지만 병원비 부담에 큰 병원은 찾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박 할머니는 “자식들도 열 평이 안 되는 전세방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데 어떻게 나를 책임지라고 말하겠느냐”며 “병이라도 들면 자식에게 짐이 될까 무섭다”고 말했다.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의 한 관계자는 “자녀 부양을 받지 못해 사실상 혼자 남겨진 노인들이 고령에 접어들면서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무연고 노인들처럼 빈곤과 외로움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오모(74)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안정된 직장에 다니며 단란한 가정을 꾸려 왔지만 경제 위기와 가족 해체를 겪으면서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공직에서 은퇴를 하고 지난 1999년 닷컴 열풍에 휩쓸려 전 재산을 걸었다. 하지만 투자가 실패하면서 아내와 이혼을 했고 자식과의 연도 끊어졌다. 한때 노숙을 하기도 했다는 오 할아버지는 “교통사고 이후 받는 장애연금과 노령연금이 수입의 전부”라며 “오가는 가족 없이 비참한 노후를 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읊조렸다.

윤정아·박준우기자 jay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