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캐나다 밴쿠버 중심가 랍슨거리는 겨울철 비와 여름철 햇살을 피하기 위해 설치한 차양을 활용, 독특한 간판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2010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밴쿠버는 태평양을 접하고 있는 캐나다 서쪽에 위치한 해양도시다.

위도상으로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보다 위쪽에 있지만, 멕시코 난류의 영향을 받는 온화한 해양성 기후로 겨울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여름에는 따스한 햇살로 유명한 지역이다. 이 같은 독특한 기후적 특성으로 밴쿠버 건물에는 예외 없이 겨울철 비를 피하고, 여름의 햇볕을 가리주는 차양(awning)이 설치돼 있다. 밴쿠버는 이런 차양을 이용한 색다른 간판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10월20일 방문한 밴쿠버의 중심가 랍슨(Robson)거리. 쭉 뻗은 거리의 양쪽 건물에 설치된 차양의 윗면과 앞면에는 상점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 또 차양 밑에는 자그마한 간판들이 달려 있었다. 차양을 이용한 간판은 가로수와 조화를 이루면서 한 폭의 유화처럼 멋진 풍경을 연출했다. 이곳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조엘 노머(여·36)씨는 “커피 이미지가 나도록 차양에 가게 이름을 적어 놓는 것으로 간판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차양 아래 테이블은 거리의 모습을 감상하며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장소”라며 “비와 햇볕을 가려주고 간판 역할을 하는 차양은 밴쿠버 거리의 특색”이라고 말했다.

밴쿠버가 차양간판으로 독특한 거리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시의 엄격한 간판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 밴쿠버시는 차양·배너·빌보드·지붕·돌출간판 등 형태에 따라 간판의 설치 위치와 크기, 전등 밝기 등을 구체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특히 차양간판은 건물의 안전성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이 중에서도 특별 관리되고 있다. 차양간판의 면적은 최대 14㎡를 넘어설 수 없으며, 수직 길이는 1m 이하로 규제된다. 또 차양간판에 사용하는 전기 관련 제품은 캐나다 정부의 인증을 받은 것만 사용해야 한다.

밴쿠버에서 광고회사를 운영하는 교민 제이슨 안(45)씨는 “밴쿠버시는 차양과 차양간판을 건물의 일부분으로 보고 간판 규제 수준을 넘어 건축물 관리 수준으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이런 규제를 어길 경우 영업정지 조치를 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밴쿠버시는 간판의 안전성을 담보하고 효율적 관리를 위해 ‘간판 이력제’를 실시하고 있다. 간판 설치허가서를 시에 제출할 때 간판의 설계자와 설치자, 관리자의 이름을 반드시 기재해야 하며, 관리자가 바뀔 경우 신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화재와 안전사고 등 간판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리고, 이에 따른 보상문제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밴쿠버 간판 관리는 거리의 지주간판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주간판 하단에는 관리회사 이름과 관리번호, 연락처 등이 부착돼 있다.

크리스티나 해롯(여·26)은 “도시의 한 특징으로 자리 잡은 차양간판에는 기후적 특징뿐 아니라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무엇이든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 밴쿠버 시민의 기질이 반영돼 있다”며 “차양간판의 은은한 불빛이 내리쬐는 밴쿠버의 밤거리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이라고 자랑했다.

밴쿠버 = 글·사진 유병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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