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기기가 급속도로 첨단화되면서 과거 대남 공작원들과 불가분의 관계처럼 여겨지던 단파라디오, 무전기 등은 이제 옛말이 됐다. 대남공작원들은 최근 인터넷상의 e메일과 MP3 기기 등을 이용한 첨단 통신 방법을 사용해 상부와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일 탈북자 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대남 공작원들의 통신 방법은 e메일이다.

이 관계자는 “대남 공작원들은 자기들만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의 e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며 “‘날씨가 맑음, 그러나 대동강은 흐림’ 같은 암호를 쓰거나 신문에 난 기사 내용을 인용해 보내는 방식”이라고 전했다. 하루에도 수없이 오가는 e메일 속에 정보 당국도 대남 공작원의 e메일을 찾아내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9월 검거된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암살 기도범은 e메일 임시보관함을 ‘사이버 드보크’로 활용해 상부와 사전 연락을 취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00년대 이후 대남 공작원들은 무역 상담 등을 위장해 수시로 중국과 동남아지역으로 출국해 상부와 접선하거나 해외에서 인터넷을 통해 북한 공작부서와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정보 당국자는 전했다. 과거 ‘일심회’ 사건의 경우 중국 등지에서 직접 접선하거나 인터넷을 주된 통신 수단으로 사용하고, 무전지령을 보조 수단으로만 병행했다.

그러나 지난 8월 검거된 지하당 ‘왕재산’ 사건 관련자들은 상부 지령을 문서나 그림, MP3 파일 등에 숨기는 ‘스테가노그래피’ 기법을 사용하기도 해 실제 통신 기술의 발달이 대남 공작활동 양상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런 통신 기술의 첨단화는 대남 공작원 검거에 큰 난항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과거에는 일제 단파라디오로 A3 방송을 수신하거나 난수 등을 통해 지령을 받았다”며 “고속메모리 무전기나 팩스 등을 통해 북한 당국에 보고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터넷상에 난무하는 e메일이나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소지하고 있는 휴대용 전자기기를 이용한 최근의 통신 기술 속에서 대남 공작원들의 활동 정황을 짚어내기는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박준희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