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항암제는 현재 한계에 도달해 있습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치료법 개발이 절실합니다. 그래서 항암제로도 죽지 않는 ‘암 줄기세포(cancer stem cell)’를 공격할 수 있는 새로운 표적 치료제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서재홍(45) 고려대 의대 구로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지난 16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항암제 개발의 필요성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현재 유방암센터장을 맡고 있는 서 교수는 먼저 기존 항암제의 한계에 대해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서울에 침투한 적군 1만명에게 포탄 수백개를 떨어뜨렸다고 치자. 포탄은 적군뿐 아니라 안타깝게도 선량한 시민들에게도 피해를 입힌다. 기존 항암제는 암 세포(적군)뿐만 아니라 정상세포(시민)까지 영향을 미쳐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또 더욱 강력한 폭탄을 사용해도 방공호 같은 곳에 은신해 살아남는 적군이 생겨 휘젓고 다닐 수 있다.

암세포만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정상세포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른바 ‘표적 치료제’같은 효과가 좋은 항암제를 써도 암이 재발하거나 전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암세포들이 항암제에 내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표적 치료제도 암세포의 내성이라는 한계를 아직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서 교수는 “이런 이유 때문에 암 줄기세포 개념의 표적 치료제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고 단언했다. 기존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에 내성을 갖는 이런 암 줄기세포를 결국 타깃으로 삼아야 한다.

그는 “암 줄기세포는 자기 증식도 하지만 다른 암 세포를 증식시키기도 하는데 수십억개의 암세포로 이뤄진 암덩어리의 99%는 이 줄기세포가 만들어낸 것”이라며 “항암제로 암 덩어리를 다 없애도 이 1%의 줄기세포가 살아 있으면 암이 재발하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암 줄기세포를 공격하는 ‘근본적인 치료법’개발이 절실한 이유다.

서 교수는 그래서 10년 전 암 줄기세포의 실체가 밝혀진 유방암 줄기세포를 타깃으로 한 표적 치료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유방암과 뇌종양의 경우 암 줄기세포를 구별할 수 있는 ‘표지자’가 개발돼 있지만 다른 암들은 아직 표지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암 줄기세포 연구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암 줄기세포 개념 자체도 생소한 국내에서는 서 교수팀이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국가에서 지원을 받아 3년 기한으로 유방암 줄기세포 표적 치료제 개발을 위한 기초실험을 하고 있는데 실험 데이터가 나오면 곧바로 동물실험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현재 유방암은 ‘허셉틴’이라는 표적 치료제가 나오면서 전체 환자의 20% 정도가 이 치료제의 효과를 보고 있다. 나머지 80%의 유방암 환자는 내성이 생기는 기존 항암제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서 교수는 진료와 연구를 함께 하는 ‘희귀 의사’로 통한다. 한국적 의료 환경에서 의사 대부분은 진료에 매여 있기 때문에 연구와 실험은 언감생심이다. 서 교수는 지난 2008년부터 2년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기초실험실에서 연구한 경력을 십분 활용해 귀국해서도 일종의 ‘주경야독’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의과학연구소 소장도 맡고 있는 그는 연구팀과 함께 기초연구인 유방암 발생 메커니즘도 연구하고 있다.

미국에서 선진 연구 시스템 ‘세례’를 받고 돌아온 서 교수가 또 하나 개혁을 시도한 게 바로 유방암 통합진료 시스템이다.

미국에서는 환자 1명을 보는 데 1~2시간씩 걸리지만 우리나라는 환자를 공장에서 찍어 내듯이 진료하는 현실을 보고 시스템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서 교수는 “의사 위주가 아닌 진정한 환자 중심의 선진 진료 시스템을 국내에 접목시켜야겠다고 생각해 다른 과 교수들을 아주 어렵게 설득해 2009년 통합진료를 처음 가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명의 의사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충분한 토론을 하기 때문에 최선의 치료법을 찾을 수 있는 게 이 시스템의 최대 장점”이라고 했다.

김충남기자 utopian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