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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구 도봉소방서 119안전센터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80여명의 소방관은 언제 울릴지 모르는 출동 명령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구조대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출동 현황판에는 당일 출동대원들의 명단이 나열돼 있었다. 대원들은 얼마 전 발생한 서울 도봉구 창동 주택 붕괴 매몰 사고 구조 작업의 피로감을 씻어 낼 틈도 없이 매일매일 크고 작은 비상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박의용(48) 소방장은 “명절에 발생하는 사고는 자칫 대형 사고로 커질 가능성이 있어 대원들이 특별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고 말했다.

경력 20년 차인 박 소방장은 소방관이 되고 나서 한 번도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그는 “솔직히 추석에 선물 꾸러미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주에 계신 부모님이 떠올라 쓸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하지만 소방관들이 명절에도 맡은 소임을 다해야 시민들이 즐겁고 안전한 추석을 보낼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경력 6년 차 정덕남(34) 소방사 역시 이번 추석에 고향에 가지 못한다. 정 소방사는 지난해 추석에 혼자 사는 할머니 집에 출동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부모님이 생각나 쓸쓸했는데 화장실에 쓰러져 있던 할머니를 구조하면서 내가 없었다면 이 할머니가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났다”고 회상했다.

박 소방장과 정 소방사처럼 추석 연휴 기간인 10일부터 13일까지 전국의 소방관들은 연휴 중 발생하는 화재 및 사고에 대비해 특별 경계 근무에 나선다.

주야 교대 근무를 하는 소방관들은 명절이나 연말연시 등 연휴 때조차 근무를 하는 까닭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추석에 고향을 찾지 못하는 아쉬움에 대해 도봉소방서 구조대 박경희(34) 소방교는 “서울이 고향인 대원들이 집에서 음식을 푸짐하게 가지고 와 나눠 먹고 윷놀이와 같은 게임도 해 괜찮다”고 말했다.

경력 4년 차 구급대 김영혜(29) 소방사는 “추석 연휴 중은 아니지만 명절 전후에 휴가를 받아 충북 영동으로 가족들을 만나러 갈 수 있다”며 “추석에 아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어 외로움에 119에 전화를 하는 소외된 이웃들이 생각보다 많아 안타깝다”고 했다.

이들 소방관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그리움에 젖어 있는 사이 도봉소방서 안에 짧고 날카로운 버저 소리가 울렸다. 현황판에 응급환자 발생 신호가 떴다. 어느새 복장을 갖춘 소방대원들이 복도를 내달렸다.

김 소방사 역시 서둘러 앰뷸런스에 몸을 실으면서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명절에 가족들 간의 불화로 주먹다짐을 하거나 방화를 해 출동하는 경우가 많다”며 “안전은 소방대원들이 지킬 테니 이번 추석에 시민들은 가족 간에 사랑과 우애를 돈독히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정경기자 verite@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추석 연휴 특별 경계 근무에 들어간 도봉소방서 119안전센터 소방관들이 비상 출동을 하기 위해 소방차에 탑승하고 있다. 김낙중기자 sanjo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