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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빈/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행정학

얼마 전 문화의 중심지 프랑스 파리에서 대한민국 가수가 공연을 하는 것을 보고 온 국민은 마치 자기의 일처럼 가슴 뿌듯해했다. 케이팝(K-POP·한국 대중가요) 가수들을 보려고 한글로 가수의 이름 등을 쓴 종이를 들고 공항에 마중 나온 프랑스 젊은이들이 한편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콘서트홀의 좌석 이틀치가 순식간에 매진되는 것을 보고, 국내 언론들은 ‘입성’이니 ‘점령’이니 하며 극찬했다.

한국은 수십년 동안 프랑스의 샹송과 영화, 그리고 수준 높은 예술성을 추구하는 오페라, 교향악을 소비해 온 나라다. 프랑스인들은 ‘배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아름답지 않은 것은 참지 못한다’는 말로 압축될 만큼, 일상생활에서도 예술을 지독히 추구하는 민족이다. 이런 저력으로 지금도 문화산업은 프랑스 경제를 지탱하는 큰 축이다. 이런 문화의 나라에서, 한국의 가수들이 그만큼 성공적으로 공연을 했다는 것은 확실히 획기적인 일이다.

과연 국내 언론이 보도한 한류열풍이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이번에 파리를 방문했을 때 에펠탑 밑에 줄을 서면서 6명의 프랑스 가족을 우연히 만났다. 그 중 대학 1학년인 한 여학생은 한국 가수에 대해 물었더니 ‘비’를 좋아하는 팬이라고 하면서 금방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가수 등 동양의 가수를 모두 다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재무부 전산직 중간관료라는 40대 중반의 오래된 친구와 그의 부인은 한국 가수의 성공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르몽드와 텔레비전 뉴스의 보도에 대해서도 그냥 지나쳤다고 했다. 관련 뉴스가 보도된 그날 우연히 바빠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떻든 무관심층이라고 생각됐다. 특히 나와는 20여년 친구 관계여서 항상 한국에 대해서는 관심을 쏟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매스컴의 전파력이 일반인에게는 제한적임을 느꼈다.

파리에서 교수로 있는 오랜 지우는 나의 질문에 대해 그리 대수롭지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프랑스는 그동안 오랜 역사를 통해 수많은 외국 문화를 접해 왔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떤 것은 잠시 지나가는 바람이었고, 어느 것은 프랑스 문화에 적극적으로 흡수됐다. 아프리카·미국·인도·아랍·남미의 음악을 수용해 왔고, 지금도 독일 가수가 인기라고 했다. 이번의 한류열풍도 그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 밖에도 몇 사람에게 더 물어본 결과 얻은 결론은 프랑스의 한류를 그리 화려한 성공으로 치부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점이다. 비록 폭넓은 조사 결과는 아니지만. 이를 부정하고 싶은 사람들은 일종의 문화 콤플렉스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이미 수십년 동안 특정한 시각의 미적 감각으로 세뇌돼 왔다.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유독 모나리자 그림이나 비너스상 조각 앞에만 한국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것은 일본의 영향을 받은 예술교육 영향이다. 그것이 세계 최고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많은 프랑스인들은 모나리자에 대해 별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각자 좋아하는 예술 장르가 따로 있다.

문화 콤플렉스를 벗어나려면, 남이 쥐어준 예술의 잣대보다는 우리 스스로의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주체적인 문화 향유를 할 줄 알 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를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여러 이질적인 문화를 용광로 같이 녹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프랑스를 문화대국으로 만든 동인이다. 파리의 조그만 성공에 만족하는 근시안은 곤란하다. 차분히 국민의 문화 저력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 반드시 국가의 장기적인 문화정책과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제 문화는 국격이고, 문화의 향유는 국민의 권리인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