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5월31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본관을 점거하고 출입문에 대자보를 붙이고 있다. 신창섭기자 bluesky@munhwa.com

서울대 법인화를 둘러싼 갈등은 ‘국립대가 법인화되면 경쟁력이 강화되는가’에 대한 찬반과 ‘대학이 효율성 원칙에 따라 움직여도 좋은가’에 대한 가치 논란이 더해지며 점점 심해지고 있다. 특히 대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는 가치관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결론은 쉽게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대학도 경쟁력을 갖지 않으면 도태되는 사회에서 국립대 법인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는 일부의 의견이 맞다면 서울대 법인화의 진행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1. 왜 문제로 떠올랐나

지성의 전당인 대학, 그것도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 일컬어지는 서울대에서 총장실 점거 농성이 며칠째 벌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서울대 법인화 재논의를 주장하고 있지만 법인화를 주도한 정부와 대학 본부는 “법인화는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입장이다.

법인화를 둘러싼 찬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데다 서울대 법인화가 다른 국립대 법인화에 미칠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서울대 법인화는 교육계 최대 이슈로 부각됐다.

한쪽에서는 국립대 중 가장 좋은 여건과 경쟁력을 갖춘 서울대가 법인화를 통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국내 최고 대학인 서울대는 경쟁과 효율의 논리보다 순수한 학문의 전당으로 남아야 한다고 말한다.

2. 추진 경과

1995년 정부 교육개혁위원회가 “원하는 국립대는 선택적으로 특수법인화를 추진할 수 있다”고 밝힌 이후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국립대 법인화 필요성은 꾸준히 거론됐다.

서울대는 ‘2007~2025년 서울대 장기발전계획’에서 서울대 발전을 위한 법인화 방향을 제시했고, 2008년 8월 이장무 당시 총장이 취임 2주년을 맞아 임기 내 법인화 추진 계획을 밝혔다. 이 총장 주도로 만들어져 학내 의견 수렴을 거친 서울대 법인화 방안은 2009년 7월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됐다.

그해 12월 확정된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법인화를 반대하는 여론과 여야 의견 차이로 법인화법은 1년 넘게 계류돼 있었다. 그러던 2010년 12월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법인화법을 통과시키면서 서울대 법인화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회 통과 이후 지난 3월 ‘서울대 법인화법 시행령(안)’이 입법예고됐고, 현재 서울대는 ‘서울대법인설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해 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3. 법의 주요 내용은?

“대학의 자율성과 사회적 책무를 제고하고 교육 및 연구 역량을 향상시킴”을 목적으로 하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서울대 법인화법)’은 인사·조직·회계 관련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대학법인 서울대 이사회는 총장과 부총장 2명,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1명, 기획재정부 차관 1명, 평의원회 추천자 1명 등을 포함해 7명 이상 15명 이하로 구성되며 반 이상을 외부 인사로 채워야 한다. 임기 4년의 총장은 총장추천위원회의 추천과 이사회의 선임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현재 서울대가 관리하는 국·공유 재산은 학교 운영에 필요한 범위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무상 양도받게 된다. 정부의 재정 지원은 법인화 이후에도 계속된다.

법인화법은 서울대가 사회적 책무를 다하도록 기초 학문 등 필요한 분야의 지원·육성에 관한 4년 단위의 계획을 수립·공표하고, 매년 실행 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했다.

4. 법인화하면 어떻게 달라지나

서울대 법인화법 공포 후 1년이 경과하는 2012년 3월, 지금의 서울대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가 된다.

대학법인 서울대의 주요 의사 결정은 이사회가 맡는다. 학장회의·평의원회·기성회 중심의 의사 결정 구조가 바뀌는 것이다. 교수 평의원회는 심의·의결 기구에서 심의 기구로 역할이 축소된다.

또 지금까지 교내에 조직을 설치하거나 없애려면 ‘서울대학교 설치령’ 등의 규제를 받았지만 앞으로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사·연구 조직을 설치·운영할 수 있다.

현재 항목별로 지원받는 예산은 총액예산 방식으로 받고 국고회계와 기성회회계로 나뉘어 있던 회계도 대학법인회계로 일원화된다. 지금까지와 달리 교육·연구 활동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수익 사업도 할 수 있다.

교직원은 본인 희망에 따라 법인 소속 교직원으로 신분을 바꿀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으며 5년간 공무원 신분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

5. 찬성 논리

서울대 법인화에 찬성하는 정부와 서울대 대학 본부 측은 정부 조직인 서울대가 독립된 법인형 조직으로 전환되면서 대학의 자율성이 강화되고 재정 확보도 용이해져 국제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서울대는 조직을 개편하거나 예산을 편성할 때 정부가 정한 법령에 따라야 한다. 건물을 증축할 때나 강의실 구조를 변경할 때도 정부의 승인과 허가를 받아야 할 만큼 사소한 규제가 많다. 찬성 측은 법인화가 되면 이런 정부의 규제 없이 예산과 인사, 학사 운영에 있어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어 ‘관료화된 서울대’에서 ‘혁신적이고 경쟁력인 서울대’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기부금 확보와 수익 사업 창출도 쉬워져 재정적으로도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찬성 측은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교육과 연구 활동이 더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란 논리를 펴고 있다.

6. 반대 논리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는 학생들과 일부 교수는 서울대가 법인화되면 수익성 확보에 치우쳐 기초 학문이 고사되고 등록금이 인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대 법인화의 취지는 경쟁력 강화에 있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조직 개편과 재정 확보가 불가피하다. 반대 측은 이러한 과정에서 교육의 공적 기능이 약화돼 상대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기초·순수 학문이 홀대받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현재 사립대보다 낮은 등록금 수준도 재정 확보를 이유로 점차 높아질 것이고 그에 비해 학생 복지 예산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반대론자들은 해외 사례를 들어 찬성론자들이 펴는 ‘법인화→자율성 확대’나 ‘법인화→경쟁력 강화’ 논리가 허구라고도 주장한다.

교직원들은 법인화로 신분이 공무원에서 법인 직원으로 바뀌면 복지나 처우가 더 나빠지고 직업 안정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며 법인화에 반대하고 있다.

7. 본관 점거까지 치달은 학내갈등

법인화 논의가 시작되면서 계속된 갈등은 학생들의 총장실 점거 사태로 이어졌다.

5월30일 오후 6시쯤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열린 비상총회에 참석한 서울대생 1700여명은 법인설립준비위원회 해체를 압도적 찬성으로 결의하고, 뒤이어 본관 점거안을 통과시켰다.

학생 500여명은 이날 오후 11시쯤 본관을 기습 점거한 이후 5일째 점거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100여명의 학생들이 본관 건물을 점거하고 있으며 학사나 재무 등 긴급을 요하는 업무를 집행하는 직원을 제외하고는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법인화 전면 재논의와 총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면담이 성사되기 전까지는 점거 농성을 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오연천 총장은 점거를 먼저 해제해야 대화를 하겠다고 밝혔고, 총학생회는 이를 다시 거부했다. 대학 본부와 학생들이 서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어 서울대 본관 점거 국면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8. 향후 전망은…

서울대 법인화를 둘러싼 갈등은 비단 서울대 내부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치권에서도 서울대 법인화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여야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박희태 국회의장이 지난해 12월8일 1년 넘게 국회에 계류돼 있던 법인화법을 직권 상정한 뒤 한나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에 반발하며 국회에 서울대 법인화법 폐기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내년 총선 이후 정치권의 지형 변화에 따라 법인화 추진이 원점으로 되돌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교과부는 서울대와 정치권의 논란에 대해 “2012년 법인 서울대 출범에 하등 지장이 없다”는 입장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현재 정관 작성, 시행령 제정 등 행정적 작업이 차질 없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다만 대화를 통한 설득 작업은 게을리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9. 지방국립대도 법인화된다는데

서울대 법인화는 지방 국립대 법인화 논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교과부 관계자는 “대학 본부는 혁신을 위해서라도 법인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대부분의 대학이 내부적으로 법인화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재 경북대 측은 재정 확충과 제2캠퍼스 조성 사업을 위해 법인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부산대 등도 타 지역 국립대와 의견 조율을 거쳐 법인화 일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교과부는 “지방 국립대 법인화는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며 의견 수렴을 거쳐 신청을 해 오면 법인화 타당성을 고려한 뒤 추진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학은 이런 개별 신청 외에 ‘2011학년도 국립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 중 1단계 ‘연합대학→2단계 법인화’ 모형을 선택·지원할 수 있었지만, 교과부는 지난 5월 마감 때까지 법인화 전제 연합대학 모델을 신청한 대학은 없었다고 밝혔다.

10. 해외대학들의 경험은?

1999년 일본은 관료조직이 운영하는 국립대학은 대학 개혁에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국립대 관계자들의 검토를 거쳐 2001년 6월 ‘도야마(遠山) 플랜’이라는 국립대 구조개혁 방침이 나왔고, 2002년 11월 각의에서 “경제적 환경 속에서 세계 수준의 대학을 육성하기 위해 국립대 법인화 시책을 통한 대학 구조 개혁 추진”을 결정했다.

2003년 7월 국립대 법인화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2004년부터 국립대 법인화가 시작돼 현재 도쿄(東京)대를 비롯한 86개 국립대학법인(2008년 현재)이 운영 중이다.

법인화 이후 자율경영 능력이 부족한 지방 중소 규모 국립대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법인 전환 이후 매년 1%씩 재정 지원을 줄였기 때문에 경영난을 겪는 대학도 있다. 또 기초 학문 분야 투자가 소홀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과부는 일본 사례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검토해 서울대 법인화법을 만들었다는 입장이다. 일본과 달리 모든 국립대를 단번에 법인화하지 않고 서울대처럼 여건이 좋은 대학부터 개별적으로 법인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서울대 법인화법에는 안정적인 재정 지원과 기초 학문을 보호·육성하기 위한 방안이 포함돼 있다.

정부의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법인화 이후 문제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고 법인화를 둘러싼 찬반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성공적인 법인화를 위해서는 법인화법을 최대한 완벽하게 만들려는 노력과 함께 법인화에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을 설득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강버들·유민환기자 oisea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