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활과 삶이란 개념을 구분하지 않는다. 사전적인 개념도 생활과 삶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활과 삶은 다르다. 예컨대 같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같은 사람은 아니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짐승과도 같은 짓을 하는 자와 사람다운 행실을 하는 사람이 다르듯이, 생활과 삶이란 것도 그렇게 다른 것이다.

생활(生活)은, 생명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 달리 말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밖에 없다. 오욕칠정에 부침하면서 살아도 생활이란 개념은 성립한다.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꼼수와 반칙을 하면서 살아도 생활이란 개념은 성립한다. 자신의 생각이 틀린 줄 알아도 또 자기 행실이 빗나간 줄 알아도 생활해 갈 수 있다. 이것은 아닌데 싶어도 그렇게 행동하고 거짓되거나 잘못되거나 맞지 않아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변통해간다. 그렇게 살아서 세상에 무엇 하나 보탬이 되지 않아도 생활이란 개념은 성립한다. 그것이 삶은 아니다.

그러나 삶이란 개념이 성립하려면, 존재와 세계의 접점, 나와 세상의 접점이 있어야 한다. 가령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 세상 밖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 속에 놓여진 나를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속의 나를 보는게 아니라 나를 통해서 세상을 보려한다. ‘내쪼대로’, 내식으로 세상을 본다.

우리가 가치를 추구할 때도 그렇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나의 가치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가치만 추구한다. 그러니까 나와 세계가 따로 놀고 세상과의 접점이 나올 수 없는 ‘나홀로 아리랑’이다. 이게 우리네 생활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나’로서는 사는 게 아니라 ‘나의 세상’을 고집한다. 이게 이른바 자기중심적 세계관이고 자폐적인 생활이다.

그리고 생활이란 것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거짓되거나 맞지 않거나, 인식과 가치가 서로 충돌하고 엇박자로 놀아도 변통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이란 것은 그렇지 않다. 인식과 가치가 따로 놀면 삶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면 삶은 없다.

인식과 가치가 마주치는 부분이 없으면 삶은 없다. 인식과 가치가 맞닿아있고 합치하는 만큼 내가 있고 삶이 있다. 그렇게 삶이란 개념은 엄정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무수하게 많은 행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지만 진실한 삶은 한순간도 없을 수 있다. 삶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죽어 있다는 이야기다. 태어날 때의 원초적인 생명력, 생래적인 생명력이 하루하룰 살면서 그렇게 소진되어 간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존재와 세계가 어긋나고 인식과 가치가 어긋난 만큼 스스로의 생명력이 소진이 되고,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는 생활에 있지 않고 삶에 있다. 삶의 개념이 없다면 인생에 발전이 없다. 지식 기술차원에서도 더 이상의 진보는 없다. 절대 나아갈 수 없다. 또 ‘나홀로 아리랑’은 세상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생활의 굴레를 탈출할 수 있는 삶의 개념을 다시 정비할 필요가 있다.

배영순(영남대 국사과교수/ baeysoon@yumail.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