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최문자 협성대 총장이 지난 11일 경기 화성시 봉담읍 상리 본교 총장실에서 시와 인문학적 상상력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호웅기자 diverkim@munhwa.com

최문자 협성대 총장은 ‘시 읽어주는 총장’이다. 1년에 두 차례 봄·가을 좋은 날을 골라 캠퍼스로 유명시인을 초청, 이들과 함께 시를 낭송하고 해설도 해준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전자 조작과 같은 첨단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이 판치는 시대에 왜 하필 시일까. 지난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지금까지 총 7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 최 총장의 말을 빌려 시를 읽는 의미를 되새겨 보자.

“지금 학생들은 시를 배우지 않아서 ‘시를 모르는 세대’입니다. 경제논리만 부각되고 인문학적 상상력은 밀려나 있지요. 시를 쓰려면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현대사회는 오히려 상상력을 절실히 필요로 하잖아요? 시를 통해 정신적 영양분을 공급하면 사유(思惟)의 힘이 생기고, 이것이 창작으로 이어지죠. 시 한 편 읽어보지 않은 학생들이 변호사, 의사가 된다고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최 총장은 또 매달 학교 홈페이지에 ‘이달의 시’를 게재해 내부 구성원과 방문객들에게 사색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한 번에 4명의 시인 대표작을 한 달간 걸어놓는데 반응이 좋다고 한다. 최 총장은 “작품을 중심으로 고른다”며 “굳이 좋아하는 시인을 꼽자면 작품세계가 탄탄한 김인숙, 진은영, 송경동, 함기섭, 함성호 같은 젊은 시인과 나이 먹어서도 시 잘 쓰는 정진규, 이건청 같은 시인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봄 햇볕이 개나리와 목련꽃을 간지럽히던 지난 11일 경기 화성시 봉담읍 상리에 자리잡은 협성대를 찾았다. 최 총장의 시론(詩論)을 듣기 위해서다. 총장실은 하얀색 벽과 천장으로 둘러싸여 마치 사춘기에 들어선 새침한 소녀의 방 같았다. 다만 서재로 꾸며진 2개 벽면에 가득한 시집과 문예서적들이 방 주인의 공력을 말해주었다. 4년 전 취임 직후 딱딱하고 엄숙한 권위적 모습을 타파하려 소파 대신 회의용 탁자를 들이고 온화한 부분조명까지 넣어 사랑방처럼 꾸몄다고 한다.

2007년 6월 협성대 제6대 총장으로 취임한 최 총장은 학내분규와 노사갈등으로 얼룩졌던 이 학교에 안정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문약(文弱)하기 십상인 시인이 어떻게 학교행정에까지 나래를 펼칠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시인이 총장 됐대, 이젠 큰일났다’ 하는 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었어요. 34년 전통의 기독 사학 최초의 내부 교수 출신 총장에, 감리교 계통 3대 사학(협성대, 감리교신학대, 목원대) 최초의 여성 총장이었죠. 하지만 막상 총장 일을 해보니 시인이라서 좋은 점이 너무 많았어요. 첫째, 시인은 감각이 칼날처럼 예리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무얼 원하는지, 왜 속상해하는지 빨리 느끼죠. 둘째, 내가 먼저 가슴을 열고 다가가기 때문에 상대방도 문을 열게 됩니다. 그래서 소통이 잘 되는 거예요. 셋째, 정치적이지 않아요. 판을 안 짠단 얘기죠. 상대와 대립각이 안 세워지니 긴장할 일도 없어지는 겁니다.”

총장 직을 무사히 수행하는 데는 1980년초 시간강사부터 시작해 1990년 문예창작과 교수가 되고 이후 학보사 주간, 생활관 관장, 교육대학원장 등을 역임한 20년 교수 생활도 큰 도움이 됐다. 교수와 교직원, 학생들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학교의 문제점도 평소 잘 알다보니 무엇을 바꿔주어야 할지 맥을 짚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초 시를 가르치고 시인을 배출하는 문창과 교수 직에 너무 행복해했던 그는 4년 전 교직원들에게 최다득표로 추천을 받아 총장 후보에 올랐다. 6명의 후보 중 1차 투표에서 총 12표 중 1표밖에 받지 못했다가 3개월이나 걸린 수차례의 결선투표 끝에 10표 만장일치로 총장에 선출됐다.

총장이 되고 나선 팔을 걷어붙이고 소통에 나섰다. 교수들과 연일 회의를 하고, 총학생회 학생과는 밥을 함께 먹으며 대화를 했다. 충분히 대화하니 신뢰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등록금 동결에 이어, 올해는 학생회 동의하에 3.4% 인상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믿음의 결과였다. 최 총장은 “재정을 투명하게 제도화한 점도 신뢰를 얻게 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제가 개인용무로 편지를 보낼 때 우표 한 장부터, 세탁물 드라이클리닝 맡길 때 푼돈까지 엄격하게 개인 돈을 씁니다. 대신 학생들의 장학금, 교직원들의 복지비용 등 공금은 어떻게 하든 더 많이 확보해서 골고루 베풀려고 애쓰지요. 돈 씀씀이에 대한 이런 청결벽적인 도덕성이 좋게 보이나 봅니다. 물론 왜 공금으로 직원 명절 휴가비를 주느냐, 인기정책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어요. (옆에 배석한 이가 매년 5월 최 총장이 쌀과 손수 쓴 편지를 전 직원에게 보내 호응이 크다고 귀띔했다). 등록금협의 같은 건 대화를 너무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웃음) 교수였을 때 저도 야권이었으니 교수님들의 불만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요.”

사실 인터뷰 시점은 조금 미묘한 때였다. 최 총장의 임기가 5월30일로 끝날 예정인 데다, 본인이 연임의 출사표를 던져놓았기 때문이다. 최 총장은 “5월 중순쯤 재단에서 결정할 것 같다”며 “연연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예정에 없이 총장이 됐으니 안 되면 시인으로 돌아가면 그뿐이라는 것. 서운한 마음 없이 결과에 승복할 것이라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최 총장은 “시인은 부드럽지만 무서운 사람이기도 하다”며 그 이유로 “이 시대 마지막 양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인이 굽으면 세상이 모두 굽지요. 용감성과 담대함은 누구 못지않아요. 전에도 뽑혔으니 열심히 했을 뿐, 한 번 더 하면 잘하겠다 싶어 지원한 거예요. 총장은 임기가 있어 유한하지만 시인은 영원합니다. 개인적 소망이라면 마지막 시집으로 가장 좋은 작품을 쓰고 싶은 겁니다. 헤세는 72세 때 최고 걸작을 썼지요. 말라르메도 몇 편 안 되는 시로 후기에 성공했다죠. 가장 젊은 나이에나 가능할 법한 그런 시를 지금 이 나이에 치열하게 써서 남기고 싶어요.”

시 이야기로 돌아오니 다시 최 총장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사학구조조정촉진법과 같은 살벌한 이름의 법안이 등장하기 시작한 이 무한경쟁의 대한민국 교육계에 ‘시인 총장’ 한 명쯤은 남아있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인터뷰 = 노성열 차장 (사회부) nosr@munhwa.com

최 총장은… ▲1943년 서울생 ▲1982년 현대문학 등단 ▲연세대 교육학 석사(1987년), 성신여대 문학박사(1996년) ▲협성대 문예창작과 교수, 학장, 대학원장 ▲박두진 문학상(2008년) ▲한국시인협회 이사, 상동감리교회 장로 ▲협성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