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의 나라’ 고려에서 은은한 자태를 뽐내던 백자가 만들어졌던 사실을 아십니까.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테마전 ‘자연의 노래, 유천리 고려청자’(5월29일까지)를 찾으면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고려백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12세기부터 몽골침입 이전인 13세기 전반까지 생산된 백자 조각들이 다량으로 출토돼 고려시대에도 백자의 생산과 수요가 있었음을 말해 주지요.

지금까지 국내에서 알려진 가장 오래된 백자는 경주 황룡사 목탑지 심초석 아래에서 출토된 7세기 전반 당나라 백자소호입니다. 경주 안압지와 익산 미륵사지 등의 유적에서도 당나라 형요(邢窯)에서 생산된 백자 등이 발굴됐지요. 놀라운 것은 한반도에서 백자의 제작 시기가 청자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고려 초인 10세기 중국 저장(浙江)성 월주요(越州窯)의 벽돌가마(전축요·塼築窯)를 도입해 도자기를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경기 용인 서리·시흥시 방산동·여주 중암리 가마 등지에서 청자와 함께 백자도 생산됐기 때문이지요.

고려백자는 그동안 대부분 두껍고 옅은 상아색(누런색)을 띠며 유약이 쉽게 태토에서 떨어져 나가는 특징으로 연질(軟質) 백자로 불려 왔습니다. 황룡사 백자소호 등 중국 수입품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도자 전문가인 구일회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은 중국에서도 순백색의 얇고 딱딱한 경질(硬質) 백자가 완성된 것은 추부백자(樞府白磁·원나라 관청인 추밀원에서 사용한 백자)가 생산된 14세기 전반 원나라에 들어와서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따라 조선전기인 15세기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경질 백자는 원나라 추부백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란 게 학계의 통설이었지요. 하지만 고려 초 용인 서리·시흥 방산동 가마는 물론. 유천리 가마터에서도 연질·경질 백자가 함께 출토돼 고려가 경질 백자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 왕실과 귀족의 무덤 등 각종 유적지에서 양질의 고려청자와 중국백자가 동반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고려백자는 기술적인 문제로 생산과 수요 모두 한계에 직면해 있었다고 추정되지만요.

이와 관련, 주목되는 것이 바로 이번 테마전에 출품된 유천리 출토 ‘백자 연잎 무늬 뚜껑’ 윗면에 붙어 있는 청자 조각입니다. 백자와 청자가 한 가마에서 동시에 구워진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효율적이지 않다고 구 부장은 지적하네요. 백자는 청자보다 50도 정도 높은 1250도 이상에서 구워집니다. 청자를 굽는 온도에 맞추면 백자가 덜 구워지고 백자를 굽는 온도에 맞추면 청자가 열을 못 견뎌 주저앉아 버리지요. 어쨌든 고려백자의 존재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하루아침에 조선백자가 출현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표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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