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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불국사·석굴암과 함께 8세기 통일신라 문화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이하 신종)입니다. 높이 3.66m에 무게 18.9t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종인 신종은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구리 12만근(斤)을 희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뒤 다음대인 혜공왕 7년(771)에 이르러 완성됐지요.

처음에 성덕왕의 원찰(願刹)로 세워진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하며 어린아이를 집어넣어 만들었다는 전설과 함께 종소리가 어머니를 부르는 듯하다고 해서 에밀레종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시대 범종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신종은 725년(성덕왕 24) 주조된 국보 제36호 상원사동종에 이어 두번째로 오래된 종이기도 하지요. ‘삼국유사’에 754년(경덕왕 13년) 무게가 49만7581근에 달하는 황룡사 대종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하나 실물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일본에도 비슷한 시기인 752년에 완성된 높이 3.86m, 무게 27t의 나라(奈良) 도다이지(東大寺)종이 전하고 있지요.

신종과 관련해 일반의 호기심을 가장 끄는 것은 전설처럼 종의 주조(鑄造) 과정에서 ‘정말 아이가 희생됐느냐’하는 겁니다. 물론 신라사회에서 502년(지증왕 3년) 순장(殉葬)이 공식적으로 금지된 만큼 반인륜·반불교적인 인신공양(人身供養)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반론이 크지요. 하지만 지난 2000년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부지 발굴조사 때 9세기 통일신라 우물터에서 확인된 8세 가량의 어린아이 인골이 제의(祭儀)의 희생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에밀레종 전설이 사서(史書)를 비롯한 전통시대 각종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다가 일제강점기 때 출간 된 자료들에 채록되면서 일본인들이 조작·유포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지요. 흥미로운 사실은 실제 일본에서도 비슷한 전설이 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금속학자인 오케타니 시게오(桶谷繁雄) 도쿄(東京)공업대 명예교수는 저서 ‘금속과 일본인의 역사(金屬と日本人の歷史)’에서 ‘종사(鐘師)인 아버지의 거듭된 실패를 보다 못한 묘령의 딸이 자신의 몸을 용해로에 던져 훌륭한 종이 만들어졌다’는 전설을 소개하고 있지요. 이와 함께 오케타니 교수는 “대부분 수분으로 이뤄진 사람의 신체는 비중이 작아 합금과 섞이지 못할뿐 더러 청동이 수분을 흡수하면 기포발생의 원인이 돼 결코 좋은 종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종은 규모가 큰데다 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금속주조품 가운데 가장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지요. 불상은 기포가 있더라도 칠을 하거나 금박을 입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지만 기포가 있는 종은 치면 그대로 깨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범종 주조의 어려움을 알리고 힘들게 완성한 종에 신비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인신공양 전설이 아닐까 하네요.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