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우희 세종대 총장이 서울 광진구 군자동 캠퍼스 내 총장 집무실에서 ‘비전 2020’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이제는 오는 2020년까지 글로벌 100대 명문대학 진입을 향해 ‘퀀텀(Quantum·비약적) 점프’를 해야 할 때입니다. ‘화해와 발전’을 거쳐 ‘일치와 창조’를 닦은 대학의 기반은 어느 정도 마련됐으니까요. 구성원들의 일치된 열정이 요구됩니다.”

세종대는 아직 과거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학교다. 재단 설립자 가족 간의 내분으로 인해 기나긴 학내 분규를 겪으면서 2005년 5월부터 장시간 관선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돼 왔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교육과학기술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우선 3~4개 대학을 기존의 임시이사에서 정이사 체제로 정상화하기로 했다.

세종대는 2010년 상지대, 조선대 등과 함께 옛 재단측 추천을 받은 정이사들이 선임되면서 정상 가동되기 시작했다. 이 힘든 시기에 6개월 먼저 들어와 미래로의 도약을 위한 터를 닦은 이가 바로 박우희(75) 세종대 총장이다.

“2009년 10월 취임해서 보니까 이 학교가 짧게는 7년, 길게는 30년 동안 분쟁을 겪어 왔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임시이사체제로 운영되면서 학교의 4대 주체(교수협의회·총학생회·교직원노조·총동문회)가 중심이 돼 교내 민주화를 이룩하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와서 과연 이 주체들이 학교 구성원의 의사를 정당하게 대표하는지 알아봤지요.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교수협의회를 10여명의 교수가 좌지우지하고 있더라고요. ‘협의회의 명단을 좀 보자, 운영규정은 뭐냐’고 따졌습니다. 총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표성을 인정하기 힘든 조직이었어요.”

외부(서울대) 출신의 총장이 들어서자마자 그동안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던 교내 조직을 흔들었으니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해 12월 학생들이 집회를 열며 총장을 탄핵한다고 나섰다. 박 총장은 ‘투쟁’과 ‘설득’을 병행하며 맞섰다.

“모든 교수들과 돌아가며 점심을 먹고 대화를 했습니다. 제가 직접 교수 연구실까지 찾아가 말을 건 적도 있습니다. 교수들이 하나둘씩 제 취지에 공감하니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지요. 학생들과도 단과대학별로 ‘총장과의 대화’를 했습니다. 2개월 만에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과부 장관에게 ‘학교 안정됐다’고 서신을 보냈지요. 2010년 2월 정이사 선임, 3월 새 재단이사장 취임은 그 결과입니다. 제가 올해 나이가 얼마입니까.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가족 간 소송에는 관심없다, 학교를 발전시킬 토대를 만들고 갈 테니 나를 도와달라’고 호소한 게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평생을 교수생활했으니 같은 교수들의 마음을 잘 이해한 점도 도움이 됐지요.”

화해와 발전을 위한 기초가 마련됐다고 판단한 박 총장은 미래비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올 1월 전체 교수회에서 확정 발표된 ‘세종대 비전 2020’은 교수와 학생이 참여한 가운데 6개월에 걸친 토론과 협의 끝에 탄생했다.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100대 대학, 국내 8대 명문 사립대학, 국내 5위권 연구중심 대학’이란 목표는 이렇게 수립됐다.

― 세종대 비전의 핵심을 설명해 주십시오.

“중요한 것은 딱 두 가지입니다. 공부와 연구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거지요. 교수의 업적을 S·A·B·C 4단계로 평가할 겁니다. 올해는 S등급만, 내년에는 C등급까지 발표합니다. 감봉은 안 하지만 인센티브는 주려고 합니다. 장기적으로 연봉제로 전환하는 게 목표입니다. 교수는 학교의 기본입니다. 교수가 열심히 연구·강의하면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하게 돼 있습니다. 홍콩과기대가 20년 만에 세계 100대 대학으로 급성장한 비결이 바로 이겁니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재원과 스타교수란 학교 발전의 양대 요소에서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박 총장은 교수 못지않게 학생들을 열심히 공부시키는 데도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교육인증제’가 바로 그것이다. 교양교육을 강화해 ‘고전 100권 읽고 독후감 쓰기’ ‘영어(중국어·일어) 말하기’ ‘고급 컴퓨터 활용’의 세 가지를 졸업 전까지 모든 학생이 마스터하도록 할 계획이다. 세종대 졸업생은 우리말과 외국어, 컴퓨터의 3대 신교양에서 믿을 만하다는 보증을 서주는 셈이다. 강의 온라인 공개와 스마트폰 강의를 활성화시키고 학사경고 등 학사관리를 강화하는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 세종대가 집중 육성하는 유망 분야를 콕 집어 예시하자면.

“22개 특성화 및 세계화 분야를 지정했습니다. 플렉서블(Flexible) 디스플레이의 기초가 될 그래핀 연구, 인간친화형 컴퓨팅 기술 등 이공계 분야를 포함해서 만화애니메이션, 한식 세계화, 호텔관광대학 등 세계화를 노릴 수 있는 학과·학문도 있지요. 정보보호학과·군사학과·해양학과는 신설할 계획입니다. 이미 천문우주학과 만화애니메이션 등 분야에 훌륭한 인재교수가 있고, 호텔관광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홍콩폴리테크닉대학의 교수님을 삼고초려해서라도 모셔올 작정입니다. 이 밖에 영국 블랙웰출판사와 경제통합저널을 함께 펴내기로 했고요, 리듬체조 신수지 선수 등이 포진해 있는 예체능 분야도 키워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복수학위도 가능하도록 할 겁니다.”

― 세종대란 이름에 걸맞게 ‘세종창조학’이란 신설 프로그램도 있던데요, 무슨 내용인가요.

“1978년 기존의 수도여자사범대학에서 남녀공학으로 바뀌면서 세종대왕의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훈민정신을 이어 가자는 취지로 교명이 세종대로 정해졌답니다. ‘세종’이란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세종창조학을 신설해 집현전 학사처럼 창의성과 진취성을 고루 갖춘 인재들을 육성할 생각입니다. 집현전 학사 프로그램이란 인문사회·이공·예체능계를 망라한 우수 인재를 발굴한 뒤, 이들에게 4년간 전액 장학금을 주며 석학들과 연계한 특별교육을 시키는 겁니다. 세종의 창조적 리더십을 모델로 한 한국형 리더십 이론연구도 목표에 속합니다.”

세종대는 오랜만에 희망을 기다리는 열기에 휩싸여 있다. 올해 초 동문회 신년회에는 유례없이 600여명의 동문들이 모였다. 모교의 발전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반영하는 지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학교측에 따르면 지난달 교직원 연수회에도 전체 400여명의 교수 중 90%가량이 참석해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열띤 분위기로 동참했다고 한다. 세종대는 지난해 개교 70주년을 맞았다. 2020년이면 80주년이 된다. 미래를 향한 세종대의 도약, 여기에는 박 총장의 세종대왕식 리더십이 한몫했음은 틀림없어 보였다. 구성원을 아끼는 애정과 성취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채 봄을 기다리는 그의 얼굴 위로 ‘현군’ 세종대왕의 초상이 어렴풋이 겹쳐졌다.

노성열기자 nosr@munhwa.com

박 총장은…

▲1935년생 ▲경북고·서울대 경제학과(1958년 졸) ▲1975년 서울대 경제학 박사 ▲1990년 일본 도쿄대 경제학 박사 ▲1991년 상공부 생산기술연구원장 ▲1992년 서울대 사회대학 학장 ▲2003년 세종대 석좌교수 ▲2009년~현재 세종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