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지훈한우농장에서 구제역으로 키우던 소 150마리를 잃은 농장주 송재성씨가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축사 바닥을 소독하기 위해 생석회를 뿌리고 있다. 안동 = 김호웅기자

“우리 한우는 옛날 농촌 부엌 한쪽에서 농민들과 동고동락하면서 텃밭을 가꾼 일꾼이었습니다. 논밭을 갈고 수레를 끄는 우리 가족이었지요. 한때는 농촌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주역들을 누구보다 열심히 키워냈습니다. 또 밀려드는 외국 농산물로부터 우리 밥상을 지킨 자존심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한우를, 우리 농촌의 희망인 한우의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다시 뛰고 있습니다.”

지난 26일 오후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지훈한우농장. 입구에 들어서자 ‘구제역 발생 접근금지’라는 노란색 띠가 길을 가로막았다. 휑한 축사에서는 농장주 송재성(56)씨가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삽으로 생석회를 뿌리고 있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맹추위 속에서 그는 장갑 끼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언젠가는 다시 이곳에 소가 가득 차고 아침 저녁 인사를 나눌 날이 있겠지요. 그 날을 기다리며 매일 소독을 하고 앞으로 들여올 송아지가 다칠까 봐 축사 장비도 꼼꼼히 살피고 있습니다.”

송씨는 전국을 휩쓴 이번 구제역으로 150마리의 소를 잃었다. 그가 이름을 붙이고 온갖 애정을 쏟던 모든 소들이 하루아침에 땅속에 묻혔다. “‘이쁜이, 고은이, 착한이….’ 새벽에 자다가 소들이 울부짖는 환청이 들려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납니다. 그러곤 나도 모르게 빈 축사로 달려가 멍 하니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일은 지난해 12월13일 벌어졌다. 아침 사료를 주러 축사에 가 보니, 소들이 침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방역당국에 신고한 후 이틀 뒤 구제역 양성 판정이 내려졌다. 1㎞ 정도 떨어져 있는 이웃 돼지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지 1주일 만이었다. “누굴 탓하겠어요. 자식 같은 소들을 정성껏 돌보지 못한 내가 떠나 보낸 것이지요.” 그는 마음속으로 위령제를 지내고 직접 안락사약을 투여했다. 소들이 한 마리, 두 마리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가슴 한쪽이 떨어져 나갔다.

송씨는 1987년 송아지 10마리로 축산업에 발을 디뎠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소를 정성껏 키우고 함께 일터로 나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정겨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축산업의 부푼 희망을 품고 덤벼들었지요.” 그는 이후 축산 관련 워크숍이 열리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가 전문지식을 익혔다. 1994년에는 4000㎡ 규모의 축사를 새로 짓고 120~150마리의 소를 키우며 부농의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러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닥치면서 첫 시련을 겪었다. 환율 인상으로 사료값이 폭등해 송아지는 20만~30만원(생후 6~8개월), 큰 소는 100만~150만원(500~700㎏)으로 가격이 폭락했다. “당시 정부에서 소를 ㎏당 4000원에 수매했는데, 한 마리, 두 마리 팔면서 5년여 동안 근근이 버티면서 소를 키워 왔습니다.” 하지만 2005년에 또 다시 브루셀라병이 덮쳤다. 이 때문에 120마리 소 중 절반 정도인 60마리를 살처분했다. 그러나 그는 시련을 딛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고,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브루셀라병을 겪고 난 뒤 주문자생산방식으로 사료 공급 체제를 바꾸고 ‘안동비프’라는 안동한우 브랜드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고기의 육질과 맛을 좌우하는 ‘올레인산’ 함량이 다른 지역보다 2% 정도 높아졌습니다.”

그는 이후 한달 평균 5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2남1녀의 아들과 딸을 모두 대학에 진학시켰다. 2008년 2월에는 인근 13개 농가와 함께 ‘풍산한우작목회’를 조직해 영농법인 ‘황소곳간’이라는 식육식당(320석 규모)을 개업했다. 하루 1000~1200명의 손님이 찾아와 대박행진을 이어갔다.

“작목회 회원들이 자신들이 키운 소를 도축해 직거래로 손님들에게 판매하고 은행 예금금리 정도의 이윤만 챙겼습니다. 또 수입의 일부는 떼어내 복지시설을 후원하고 불우이웃에게 연탄도 공급하고 장학금도 기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구제역은 작목회 회원 농가를 모두 휩쓸고 말았다. 13개 농가 중 한우를 키우는 9개 농가, 1200여 마리의 소가 모두 매몰됐다. 구제역 발생으로 ‘청정지역’이 ‘오염지역’으로 바뀌면서 식당 손님의 발길도 끊겼다.

하지만 구제역도 명품 한우를 향한 그의 열정을 꺾진 못했다. “안동한우는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던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맛을 보고 극찬했습니다. 이 명성을 되살리고,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구제역이 안정되면 이전보다 많은 500마리 정도의 안동한우를 키울 수 있는 새로운 목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또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할 후계자를 육성해 안동한우의 명성을 이어가게 할 방침이다. 송아지를 ‘명품’ 안동한우로 키우는 데는 최소 2년 이상 걸린다. 그는 철저한 사육과 품질관리를 통해 2년 후에 국내 최고의 ‘명품 한우’를 식탁에 다시 내놓을 계획이다.

“구제역 사태로 많은 축산농민들이 좌절을 겪고 있습니다. 저 또한 축산 인생 25년 만에 세 번째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농촌의 미래, 축산업 부흥을 위해 반드시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송씨는 이번 설을 맞아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안동 = 박천학기자 kobbl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