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1일 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XIII - 스팅 내한공연’에서 스팅이 열정적인 몸짓으로 노래하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일찍 세상을 떠난 스타들은 팬들의 가슴속에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남는다. ‘요절’의 영광을 얻지 못한 스타들은 초라하게 늙어 간다. ‘관록’이란 말로 애써 포장하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활동 기간 내내 최고의 무대를 선보이는 아티스트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1일 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스팅의 세 번째 내한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은 이 ‘극소수’의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데뷔 30년, 올해 예순을 넘긴 이 슈퍼스타는 변치 않는 관록과 최고의 무대를 선보였다. 록에서 블루스, 월드뮤직과 클래식을 넘나드는 ‘팝의 연금술사’는 그가 현재 진행형 슈퍼스타임을 증명했다.

초반은 조금 불안했다. 예상치 않은 폭설로 입장이 늦어지면서 객석은 어수선했고, 사운드 조율도 불안한 상태로 출발했다. ‘이프 아이 에버 루즈 페이스 인 유(If I ever lose my faith in you)’와 ‘에브리 리틀 싱 쉬 더즈 이즈 매직(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을 잇달아 연주했지만 2층 객석 맨 앞에서 듣기에도 소리가 너무 작았고, 스팅의 보컬은 관현악 사운드와 어울리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히트곡 가운데 하나인 ‘잉글리시맨 인 뉴욕(Englishman in New York)’의 익숙한 인트로가 나오면서 객석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채 목이 풀리지 않은 듯 고음부에서 목소리가 갈라지기도 했지만 스팅은 뜨거운 객석의 반응에 조금씩 흥을 돋우기 시작했다. ‘신사는 절대 뛰지 않고 늘 천천히 걷지(A Gentleman will walk but never run)’라는 가사에서는 땀 닦는 시늉을 하며 재치 있는 무대 매너를 선보이기도 했다. 후렴 ‘비 유어셀프, 노 매터 왓 데이 세이(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를 관객들과 나눠 부르면서 객석의 열기는 고조됐고, 스팅의 보컬과 연주는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스팅이 발표한 ‘심포니시티즈(Symphonicities)’ 투어의 일환. 자신의 히트곡들을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녹음한 이 앨범은 지난해 이후 세계 각국 투어를 통해 명품 공연임을 입증했다.

올해 아시아 투어의 첫 방문국인 우리나라에서 스팅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격정적인 지휘로 유명한 지휘자 스티브 머큐리오와 스팅의 음악적 동반자 도미니크 밀러는 순식간에 무대의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이후부터 최고의 무대가 계속됐다.

‘심포니시티즈’ 음반 최고의 트랙, ‘록산느(Roxanne)’, 1980년대 냉전시대 경험을 그린 철학적 대곡(大曲) ‘러시안스(Russians)’ 등 더 폴리스 시절부터 솔로 활동까지 그의 히트곡이 이어졌다. 영화 ‘레옹’ 삽입곡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노래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Shape of my Heart)’에 이르렀을 때 무대 열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스팅은 15분가량의 인터미션을 제외하곤 쉬지 않고 본 공연에서만 23곡을 연주했다. 때로는 감미로운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거나 하모니카로 흥을 돋웠고, 록비트가 강한 곡에서는 직접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며 ‘댄스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관객의 기립 박수 속에 이국적인 사운드의 명곡 ‘데저트 로즈(Desert Rose)’와 ‘쉬즈 투 굿 포 미(She’s too good for me)’를 앙코르곡으로 연주한 스팅은 감미로운 발라드 히트곡 ‘프래즐(Fragile)’로 3시간 가까운 무대를 마쳤다. 관객들의 환호가 이어지자 스팅은 코트 차림으로 무대에 돌아와 무반주로 마지막 앙코르곡을 부른 뒤 미소 가득한 얼굴로 작별 인사를 전했다. 스팅의 에너지가 한순간에 소멸한 무대, 관객들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좀처럼 객석을 떠나지 못했다.

이동현기자 offramp@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