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은희 덕성여대 총장이 11월30일 서울 도봉구 근화교길에 있는 이 대학 집무실에서 창학 100주년에 대한 비전을 밝히고 있다. 정하종기자 maloo@munhwa.com

지은희(63) 덕성여대 총장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낙관주의자다. 그는 좌우명 대신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걸 주문처럼 여기고 있다. 언젠가는 꿈이 이뤄진다는 신념을 안고 산다. 그가 낙관주의자인 이유다. 지 총장은 인간 속에는 선(善)함이 있고, 이게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확신을 갖고 시민사회운동을 해왔고 장관직을 지냈으며 지금 대학 총장을 하고 있다. “하하하. 맞아요 맞아. 저는 지금은 어렵더라도 언젠가는 해낼 수 있다는 희망,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아요. 그런 의미에선 낙관주의자가 맞습니다.”

11월30일 오후 서울 도봉구 북한산 자락의 공기 좋은 곳에 자리잡은 근화교길 인근 덕성여대 본관 집무실에서 마주한 지 총장은 첫 대면부터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내내 웃었다.

낙관주의자 지 총장이 대학교육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강조한 것은 국제화시대를 맞는 덕성인의 ‘글로벌 파트너십’이었다. 대학 경영의 목표는 학생들이 행복해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라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다들 리더십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리더십이라는 콘셉트 그 자체가 이끄는 자와 이끌려 가는 자를 나누는 겁니다. 이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인간상이나 사회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연과 인간이든, 남자와 여자든 리더십이 아니라 파트너십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내면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특히 국제화한 시대에 글로벌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저는 이런 철학을 갖고 덕성여대를 ‘특성화 대학’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글로벌 파트너십을 갖추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세계적인 시각과 세계적인 소통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소통 능력을 갖추기 위해 영어를 중점적으로 교육합니다. 누구든 입학을 한 뒤 3주간 영어 기숙교육을 받도록 한 건 이 때문이죠. 파트너십은 상호 존중하는 것, 동행,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 등이 포함됩니다.”

덕성여대는 1920년 여성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차마리사에 의해 설립됐다. 올해 창학 90년을 맞았으니까 10년 후인 2020년에는 100주년을 맞게 된다. 사실 대학 중 독립운동가가 만든 대학이 몇 곳 되지 않는다. 지 총장은 “이게 덕성이 갖는 자긍심의 뿌리”라고 설명했다.

―창학 100주년의 비전을 밝혀주시죠.

“얼마전 ‘비전 2020+’ 5대 특성화사업을 선포했습니다. 한마디로 ‘학부 중심으로 세계 수준의 교육 명문대학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내년부터 전공이 학과제로 되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완전 학과제로 바뀝니다. 덕성은 규모가 6000명 정도의 작은 대학입니다. 하지만 ‘맞춤식 교육’이 가능한 대학이죠. 학부에서 세미나 교육을 제일 처음 도입한 대학이 바로 덕성입니다. 규모가 큰 대학이 맞춤식 교육을 한다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요.”

지 총장이 밝힌 학과제 교육의 단위는 20명 안팎이다. “이게 학교로 보면 보통 투자가 아닙니다. 학과별 졸업인증제도 내년부터 도입합니다. 학과별로 그걸 통과하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정도경영도 중요하지만 지표경영도 무시할 수 없는 일 아닌가요.

“우리 학교가 지표경영에 무심한 건 아니에요. 알고 보면 그 어느 대학보다 지표에 충실합니다. 등록금은 서울 지역에서 제일 싸고요, 교수 확보율도 굉장히 높습니다. 장학금도 매년 획기적으로 늘려서 지금은 톱클래스에 랭크돼 있습니다.”

지 총장이 강조하고자 한 것은, 지표경영은 내실 있는 정도경영의 결과인 것이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라는 점이다.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정도경영에 신경 쓰면 지표도 자연스럽게 오르게 돼 있어요. 지난해에는 교과부 8대 지표에 있어 덕성이 여자대학 가운데 종합 2위를 했습니다.”

지 총장은 “정말로 학생들을 행복하게 하면서 교육의 내실을 기하면 자연히 지표는 오르지만 지표관리에만 매달리면 이걸 놓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철학 때문일까. 지 총장은 통계나 수치가 모든 걸 평가하는 시스템을 거부한다. 지 총장은 ‘경쟁’이란 말 자체를 대단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학이나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경쟁 지향적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 총장은 과거 여성부 장관 재직 시절 부처 내의 공식문건에 ‘경쟁력’이란 단어를 쓰지 말라고 지시했던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처음엔 나도 모르게 (경쟁이란 단어를) 썼는데…그러다 보니 내실보다는 정말 지표를 올리는 데 관심을 갖게 되더라구요.” 지 장관은 한참 후에 “이건 아니다”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지 총장은 대학에 온 뒤에도 경쟁이라는 단어는 좀 덜 쓰려고 노력 중이란다. 대학을 경쟁 원리로만 보는 걸 뛰어넘어 특성을 살려주고, 구성원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올바른 대학 경영의 방향이란 뜻이다. ‘학생들이 행복한 대학, 내실을 기하는 대학을 만든다’는 지 총장의 교육철학이 이렇게 싹텄다.

―행복이란 게 때론 추상적으로 들립니다. 예컨대 취업률이 떨어지면 학생들이 행복할까요.

“네 맞아요. 취업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학부 중심 대학입니다. 학문을 직업으로 선택할 학생은 10%도 안됩니다. 나머지는 졸업 후 일해야 하죠. 덕성은 신입생을 맞는 순간부터 적성조사하고 관리에 들어갑니다. 인력개발원이나 여성부 등에서의 행정 경험을 살리고 있습니다. 취업은 생활의 물적 토대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덕성의 취업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이게 바로 내실경영을 통한 지표경영적 성과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전체 개국(開局) 약사 가운데 무려 10%가 덕성 출신이라는 점은 지 총장의 말이 허언(虛言)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지 총장의 평가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특히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 대해서는 전문성과 성실성을 인정하고 있다.

―진보적 시민사회운동을 오래 해왔는데, 보수 정부의 교육정책과 별로 마찰이 없습니까.

“어느 지점까지 양보해야 하는지를 아는 게 지혜입니다. ‘중간’지대를 찾아서 대안을 만드는 자세가 중요하죠. 이게 파트너십, 즉 상호존중이고 동행 아닙니까. 누가 보수냐 진보냐를 따질 필요가 없어요. 그 정책이 우리 대학의 성장에 도움이 되느냐를 판단하는 게 중요한 거죠.”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제가 대학 다닐 때는 진학률이 20∼30%였지만 지금은 84%나 됩니다. 그렇다면 정부의 대학 지원정책이 바뀌어야 합니다. 국공립은 지원하고 사립은 지원하지 않고 이러면 안됩니다.”

장관, 시민운동가, 대학 총장 중 어떤 게 가장 좋으냐는 질문에 지 총장은 웃었다. “각각 다 다르죠. 하지만 총장 임기가 끝나면 더 할 생각은 없습니다. 시민운동, NGO를 해야죠.” 지 총장은 “내 궁극적 관심은 대안적 사회”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 허민 사회부장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