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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 / 주 몽골대사

몽골인은 푸른 색을 숭상한다. 어디를 가나 볼 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소원을 담은 푸른 띠 하닥이 둘러져 있다. 집집마다 그리고 이들이 숭상하는 어워(성황당)에도, 석상에도, 마을 어귀에도 조금만 높은 곳이면 곳곳이 몽골의 푸른 하늘을 상징하는 푸른 천이 어김없이 둘러져 있다.

겨울철 잿빛 도시에서 뿌연 매연에 갇혀 사는 요즈음에는 특히나 여름철 푸른 하늘이 그리워진다. 작년 늑대사냥에 함께 나섰던 주몽골 카자흐스탄 대사는 한국인, 몽골인, 카자흐스탄인은 푸른 늑대의 후예이고, 투르크 계열 중앙아시아 민족은 붉은 늑대의 후손이라며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민족적 친근성을 열심히 설명한다.

요사이 ‘몽골이 뜬다’고 야단이다. 이제는 몽골 관련 뉴스가 자주 언급되어 심상하게 느낄 정도다. 올해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몽골을 다녀갔고, 그 숫자는 작년보다 두배 많은 10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올해는 수교 20주년으로 행사가 많았다. 한식의 밤, 난타와 비보이 공연, 한국 영화제, 한글 말하기 대회와 노래자랑 등 우리를 알리는 수많은 문화예술 행사들이 열렸고, 몽골의 자체 행사도 여럿 있었다. 전 국민이 기리는 나담 축제, 국회 개원 20주년 행사, 민주화 20주년 기념행사가 있어서, 우리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한류, 한식, 한글이 거부감 없이 몽골에 받아들여지고 있다. 20년 전 몽골이 대외개방과 자본주의를 수용할 때 우리와의 수교가 이루어졌는데 이제는 변화의 물결 중심에 우리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 마음 뿌듯하다.

수도 울란바토르의 모습도 변화하고 있다. 북쪽의 이르쿠츠크와 남쪽의 베이징(北京)을 연결하는 중간거 점으로서 울란바토르의 역할은 우리 기업이 건설하고 있는 남쪽 간선도로가 완성되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한때 세계의 중심이던 하르호린(카라코룸·옛 몽골제국 수도)을 꿈꾼다면 과장일까. 젊은 기업인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조상들이 세계정복을 위해 사방으로 질주했던 것처럼 자본주의와 기업운영, 선진제도를 배우기 위해 푸른 늑대처럼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를 맞아 우리 젊은이들도 도시와 농촌에서 그리고 한갓진 광산에서 꿈을 실현하려고 애쓰고 있다.

수많은 한국식당이 몽골인의 입맛을 바꾸어 놓고 있으며, 우리 미용실과 한국형 아파트, 각급 학교도 한글과 우리 문화를 알리는 전당이 되고 있다. 인구 270만명, 가축 5000만마리, 한반도의 일곱 배 반이나 되는 몽골의 생활문화의 변화를 주도하면서 한국이 사회변화의 앞길을 푸른 늑대처럼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말 고비사막 만다흐 군에 다녀왔다. 수도에서 남쪽으로 550㎞쯤 될까. 가는 데만 하루 종일 걸리는, 아무도 찾지 않는 동네였다. 전기 없이 살아온 150여 가구 주민에게 풍력과 태양열을 이용하여 전기와 물을 공급하는 사업을 끝내고 나니, 그날 밤 지역 주민들은 새벽까지 춤추고 노래하며 우리 정부에 사의를 표했다. 이처럼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원조야말로 우리를 본받으려는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사업일 것이다.

현재 한국 체류 몽골 근로자는 3만 명, 이중 불법체류자가 37%이다. 그만큼 매력 있는 한국은 ‘솔롱고스(무지개의 나라)’라는 꿈이기보다는 이제 실질적인 이익을 주는 ‘제3의 이웃’으로 몽골에 다가가고 있다. 몽골이 이렇게 가까이 다가와 있는데, 최근 한국인 몇 명이 금괴밀수 혐의로 공항에서 체포돼 수사를 받고 있다. 어리석은 몇몇 사람의 행위가 이곳에서 땀 흘려 일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포부를 훼손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국내에서도 외국 근로자들의 미숙함을 넓은 아량으로 보듬어 안을 때 우리도 푸른 늑대로서의 원대한 꿈을 세계 속에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일(55)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외무고시 17회 ▲중동과장 ▲주프랑스 공사참사관 ▲이라크 공사 겸 아르빌지방재건(RRT)지원대사 ▲주몽골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