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공일 G20정상회의준비위원장이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G20서울정상회의가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밝게 웃고 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사공일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

민간 경제연구소장들과의 오찬간담회, 타르만 싱가포르 재무장관 면담,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만찬, 다나카 노부오(田中伸男)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 면담….

사공일(70)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의 이번 주(7월12∼16일) 공식 일정 중 일부 내용이다. 한국무역협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그의 요즘 스케줄은 말 그대로 ‘분 단위’로 쪼개서 움직여야 할 만큼 살인적이다. 매사를 대충대충 하고는 배기지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강연 자료 준비 등도 세심한 그의 손을 거쳐야 한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한두 번은 겪었을 법도 한데, ‘인연(?)’이 안 닿아서인지 그를 직접 대면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2시간여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칠십이라는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이었다. 오랜 경륜에서 우러나는 ‘내공’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4개월여 앞으로 임박한 G20서울정상회의를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와 국격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그의 소신은 일종의 ‘신앙’처럼 느껴졌다.

# 책임감이 더 커진 G20서울정상회의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G20정상회의준비위원장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며 지난 6월 캐나다에서 열렸던 G20토론토정상회의가 먼저 화두에 올랐다. 재정 건전화 방안 등에 대해 일부 합의했지만 각국 간 적지 않은 이견이 노출돼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정상회의에도 부담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던 터였다.

“이번 G20토론토정상회의에서는 주요 국가 간 어느 정도의 시각차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미약한 세계 경제의 회복세를 고려해 재정 건전화 계획도 성장 친화적이어야 한다는 데 합의를 봤습니다. 사실 토론토정상회의는 처음부터 11월 서울정상회의에 이르는 과도기적 회의로 준비됐어요. 실제로 정상들은 IMF 쿼터 조정, 은행 자본과 유동성 규제 등 어려운 사항들에 관해 서울정상회의로 미뤄 서울에서 마무리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그는 “토론토정상회의의 선언문을 보면 서울정상회의에서 논의를 마친다든지, 서울정상회의까지 마친다는 등 서울정상회의 언급이 8번이나 나온다”고 말했다. “이는 서울정상회의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 회의를 준비하는 의장국으로서 부담감과 책임감도 그만큼 커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서울정상회의의 중점 의제는 어떤 게 될까. 서울정상회의에서 이 같은 의제에 대한 각국 간 이견을 조율해 의미 있는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을까.

“우리의 목표는 오는 11월 서울정상회의가 끝난 이후에 ‘코리아 이니셔티브’로 불릴 수 있는 중요 의제들에 관한 합의를 서울정상회의에서 도출해 내는 데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개발도상국과 신흥경제국이 필요로 하는 경제 개발과 글로벌 금융안정망에 관한 것을 서울정상회의의 중점 의제로 추진해 오고 있고요. 지금까지 G20 정상회의는 당면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원지인 선진국들의 정책적 관심 사항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온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비(非)G20 국가들, 특히 많은 개발도상국과 신흥경제국의 관심사와 정책 우선순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었고 이를 위해 꾸준히 다른 G20 국가들을 설득해 왔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기는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경제 개발과 금융안정망 구축에 관해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입장에 있어요. 서울정상회의에서 이 같은 의제들과 관련, 성공적으로 합의를 도출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국격 업그레이드의 출발점은 ‘법과 질서’ 준수”

G20서울정상회의를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서울정상회의를 준비하는 위원장으로서 이를 위해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G20서울정상회의를 집안 잔치에 지역 유지를 초청한 것으로 비유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갔다.

“이렇게 예를 들어 봅시다. 어느 집에서 잔치를 하는데 ‘지역 유지’들을 초청하면 동네의 이목이 집중되지 않겠어요. 이런 때 아이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잔칫상 준비나 절차 등도 짜임새 있게 하면 사람들이 ‘저 집안은 재력은 그만그만해도 근본이 된 곳이구나’ 하고 평가하지 않겠습니까. 이걸 하자는 겁니다. 30명이 넘는 세계 최고의 정상급 인사들과 수천명의 취재진을 포함한 주요인사 1만여명이 서울에 오고 세계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을 때 우리가 제대로 한번 보여 주자는 겁니다. 세계인들이 ‘대한민국은 경제만 발전한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식도 높더라. 예술·문화·역사 등도 수준이 있더라’ 하고 평가하게 되면 국격이 올라가는 것이죠. 그러면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도 올라가고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면 이는 국민들에게 경제적 이익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는 “우리 개개인의 인격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며, 한 나라의 국격은 그 나라 국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인들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는 서울정상회의에서 우리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성숙된 시민의식을 보여 줄 수 있도록 모든 국민이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공 위원장은 “이를 위해 우리 국민 모두가 각자 생활 속에서 남을 배려하고 법과 질서를 지킬 뿐만 아니라 예의범절이 있는 선진 시민의식을 보여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문화일보는 경제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각종 현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조사에서 ‘G20서울정상회의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과정에서 어느 부문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응답자의 87%가 ‘정치’를 지목했다.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거론하며 슬쩍 운을 떼 봤다.

“국격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선 가장 중요한 게 법과 질서 준수예요. 법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으면 민주주의 자체도 제대로 될 수 없으니까요. 특히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솔선수범이 돼야겠죠. 서울정상회의가 열리고 세계가 주목하고 있을 때 국회에서 폭력이 난무하고 그러면 되겠습니까….”

사공 위원장은 서울정상회의에 맞춰 열리는 ‘민간 비즈니스 서밋’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내보였다. 서울정상회의 하루 전인 11월11일에 세계 유수 기업인 100여명을 초청, 세계 경제의 굳건한 회복을 위해 민간 기업들이 해야 할 일에 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는 것.

그는 “G20 각 국가에서 최고 기업인들을 4∼5명씩 부르고, 비G20 국가에서 일부 불러 100여명의 기업인을 초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빌 게이츠를 포함해 60여명의 참석이 이미 확정됐고 세계 유수 기업인들이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의사를 표명해 오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공 위원장은 “지금까지 G20에 민간 부문의 참여는 제한적이었던 게 사실”이라며 “G20 의장국으로서 우리나라는 앞으로 이러한 비즈니스 서밋이 G20 정상회의 과정의 중요한 일환으로 계속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는 데 목표를 두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 경제계의 마당발…“열심히 공부하세요”

사공 위원장이 구축해 놓은 국제적인 인적 네트워크는 그의 최대 강점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그는 ‘국제 경제·금융계의 마당발’로 통한다. 실제로 그는 지난 6월 G20토론토정상회의에 참석한 이후 미국 워싱턴에 들러 하버드대 총장과 미국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세계적 석학이자 현재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정책 입안과 집행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로런스 서머스 박사를 만났다. 이어 뉴욕에서는 전 연방준비위원장이었던 폴 보커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했다. 또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프레드 벅스타인 박사, 워싱턴에 있는 주요 연구기관의 석학 10여명과 2시간 이상 브레인스토밍을 했다고 한다. 스트로스칸 IMF 총재와 존 립스키 부총재, 그리고 앤 크루거 전 부총재 등과도 만나 의견을 나눴다. 남들은 수개월 전부터 스케줄을 잡아야 겨우 만날 수 있는 ‘국제 경제계의 거인’들을 사공 위원장은 전화 한 통화로 해결해 버린다. 이 같은 내공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세계적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끊임없는 자기 계발이 필요한 거죠. 그들과 만나 대화가 되려면 그들이 알고 관심 있는 것을 나 자신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 유용한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과 친교를 유지하려면 상호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먼저 형성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지만 이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되지 못합니다. 그들과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있도록 그들 못지않게 계속 공부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결국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안 돼요.”

실제로 그는 글로벌 경제 이슈의 신조류를 챙기기 위해 지독할 만큼 공부에 매달린다. 일반 서적이나 잡지 외에 매일 아침 파이낸셜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 등을 정독하면서 글로벌 경제 이슈를 꼼꼼히 챙긴다. “하루라도 읽지 않으면 무언가 미싱(missing)할지 몰라서 불안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기자에게도 “글로벌 경제 이슈를 놓치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수차례 당부했다. 칠십의 나이에 뿜어내는 그의 지적 열정 앞에서 기자의 나태함이 한없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G20준비위원장 겸직이 무역업계에 도움될 것”

그는 지난해 2월 제27대 한국무역협회장으로 취임했다. G20정상회의준비위원장직을 겸직하다 보니 일각에선 11월 서울정상회의를 앞두고 너무 바빠 무역협회장직 수행에 소홀한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슬쩍 물어봤다.

“그건 저를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성격상 매사를 대충대충 하고는 배기지 못합니다. 따라서 좀 힘들지만 제게 맡겨진 무역협회장 직무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고 고마운 것은 무역협회 임직원들이 G20정상회의준비위원장으로서 제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잘 이해하고 협회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공 위원장은 “무역협회가 해야 할 일 중 첫 번째는 무역업계가 아쉬워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도와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무역협회 임직원에게 ‘현장’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협회는 무역업체가 현장에서 겪고 있는 애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도록 지난해에는 무역 현장 119지원단을, 올해에는 종합무역컨설팅지원단(TradeSOS)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전국 11개 권역별로 간담회 및 설명회 등 무역업체와의 만남을 수시로 개최해 업계의 애로 사항을 수렴하고 있어요.”

그는 “무역업계를 지원하고 애로 사항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 유관부처 및 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런 점에서 제가 G20정상회의준비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게 무역업계의 의사를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공 위원장은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무역업계를 돕는 일은 우리 무역업체들이 해외에서 뛸 장(場)을 넓혀 주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어렵게 협상을 끝낸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조속히 발효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4월 무역협회가 한·미 FTA의 조속한 비준을 촉구하기 위해 주미대사관, 미 상공회의소 등과 함께 미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면서 한·미 FTA 비준 촉구 활동을 펼친 것도 이 같은 연장에서라고 한다.

#“기업과 기업인이 존중받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그는 2010년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의 생각을 물어봤다.

“재정위기를 맞고 있는 일부 유럽 국가들의 더블딥(경기회복 과정에서 다시 침체)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지만 세계 경제 전체의 더블딥 가능성이 현실화될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봅니다. 지난 토론토정상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주로 논의됐는데 재정 건전화를 실시하되 단계적으로 추진해 세계 경제가 더블딥에 빠지게 하지 말자는 데 정상 간 의견을 같이한 바 있습니다.”

사공 위원장은 한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몇 가지 리스크(위험) 요인에 대해서는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를 둘러싸고 올 하반기에 예상되는 몇 가지 글로벌 리스크 요인으로는 먼저 미국 경제의 성장세 지속 여부가 있습니다. 미국의 고용·주택시장이 그동안의 경기 부양책 효과가 소진된 이후에도 자생력을 회복할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인데,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적 대응을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어요.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도 불안 요인 중 하나입니다. 재정위기를 맞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원리금 만기가 7월에 집중적으로 도래하는 데 따르는 금융시장의 변화를 눈여겨봐야 할 겁니다.”

사공 위원장은 한국 경제의 앞날을 이야기하던 중 “그동안 한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이 최근 많이 위축된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가 정신이 활발해지려면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필요 이상의 규제를 철폐 내지 개혁하고 건전한 노사 관계를 이룩해 기업과 기업인이 존중받는 여건을 만들어 줄 때 기업가 정신도 최대한 발휘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G20이라는 게 쉽게 이야기하면 유엔 가입 192개국 중 유지 격인 20개국만 모이는 것입니다. 여기 일원이 된 것만 해도 역사적으로 큰일인데 우리가 좌장이니 엄청난 거죠. 그동안 우리는 남들이 만든 질서 속에서 순응만 했는데, 이번에는 세계 금융 질서를 창조하는 데 우리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된 겁니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이번 정상회의를 국격 상승의 기회로 삼기 위해선 국민 모두가 생활 속에서 남을 배려하고 예의범절을 지키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기 역할을 다해 줘야 해요. 저는 믿습니다. 위기 때마다 저력을 발휘해 온 우리 대한민국의 힘을….”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가 전한 마지막 당부가 묵직한 울림이 돼 다가왔다.

인터뷰 = 김병직 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 bjkim@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사공일 G20정상회의준비위원장이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자신의 건강 관리법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