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0일 오후 전남 여수시 돌산읍 죽포리 밭에서 한 농민이 갓 수확한 돌산갓을 손에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돌산(여수) = 곽성호기자

봄답지 않게 초여름 날씨가 연일 이어져 자칫 입맛을 잃을 수 있는 요즘이다. 이런 계절에는 톡 쏘면서도 쌉싸래한 향이 입 안 가득 퍼지는 ‘돌산갓김치’를 추천할 만하다. 지난 10일 오후 돌산갓김치의 주산지인 전남 여수시 돌산읍 죽포리를 찾았다.

바닷가와 접한 마을이면서도 작은 산들로 둘러싸인 지형 때문인지 어촌이 아니라 산촌 같은 느낌이 든다. 고운 햇살이 내리쬐는 들녘 곳곳에서는 아낙네들이 해풍에 살랑대는 돌산갓을 수확하고 있었다.

현장을 안내한 여수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돌산갓은 1년에 4차례 수확하는데 4, 5월에 베어낸 것을 최상품으로 친다”며 “저장성이 좋고 숙성을 시키면 제대로 맛이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돌산갓은 싹이 튼 후 40∼60일이면 훌쩍 자라기 때문에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4계절 모두 수확이 가능하다.

돌산갓의 유래를 더듬자면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돌산갓은 60여년 전 일본인들이 돌산읍 우두리 세구지마을을 채소단지로 개발하면서 심었던 갓이 점차 개량돼 오늘의 품종으로 자리잡은 것.

25년 전까지만 해도 돌산도를 중심으로 소비되던 돌산갓은 1984년 12월 여수시내와 돌산도를 잇는 연륙교 ‘돌산대교’의 개통을 계기로 육지로 반출된 뒤 전국적 명성을 얻어갔다. 1991년에는 전남도 특산품으로 지정됐고, 1994년 돌산갓을 조직적으로 생산·유통·가공하기 위한 영농조합법인도 설립됐다. 전국적으로 수요가 늘다보니 1985년 957t이었던 돌산갓 생산량은 2009년 말 3만2000t으로 25년 만에 30배 이상 늘었다.

현재 여수에서 자라는 돌산갓 종자는 일제 때 심어진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 여수시 농업기술센터가 2001년부터 개량작업을 한 뒤 국립종자원에 보호등록 또는 출원을 한 품종들이다. 이 가운데 2007년 개발된 ‘늦둥이’란 품종은 5월까지도 수확이 가능해 전체 재배면적의 30%를 차지할 만큼 인기가 높다.

돌산갓은 부드러우면서도 톡 쏘는 ‘알싸한 맛’을 지닌다. 잎이 넓은데다 재래종 갓과 다른 지역 갓에 비해 쓴맛, 매운맛이 덜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같은 종자라도 여수에서 나는 돌산갓이라야 특유의 맛이 나는 이유는 천혜의 자연환경 때문이다. 이와 관련, 돌산갓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 김성원(59)씨는 “여수의 풍부한 일조량과 해양성기후, 좋은 토질 등 3박자가 맞아떨어져 품질 좋은 갓이 생산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현재 여수지역에는 1300여명의 농민이 돌산갓을 재배하고 있으며 이를 가공·판매하는 업체는 300곳이 넘는다. 돌산갓영농조합법인과 여수농협이 돌산읍 죽포리에 대규모 김치가공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돌산갓김치의 ㎏당 판매가격은 5000원.

장민태(44) 여수농협 김치공장 공장장은 “올 1∼4월 매출이 지난해 동기에 비해 10% 이상 늘었다”며 “배추값이 크게 오른 데 따른 대체수요도 있지만, 봄철 입맛을 되찾기 위해 갓김치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택배 기사 홍근신(49)씨는 “요즘 인터넷 주문이 많아 죽포리에서 발송되는 갓김치 택배 물량이 하루 500여건”이라고 말했다.

㎏당 800원가량 하는 생갓을 사서 집에서 담가 먹는 것도 돌산갓김치를 즐기는 방법이다. 여수 돌산갓은 65%가 채소로 서울 가락동 시장 등에 팔리고 35%는 현지 김치가공용으로 쓰인다.

돌산(여수)=정우천기자 goodp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