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지난 1999년 말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권좌에 오른 뒤 줄곧 러시아를 지배해왔다. 3선연임 금지로 인해 2008년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는 총리를 맡아 권력을 유지했다. 지난 10년간 푸틴 총리의 강력한 리더십 속에 러시아는 만만찮은 경제성장을 이뤄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권위주의 통치로 인해 러시아 민주주의는 오히려 퇴보했다. 지난 2007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면서 “러시아의 새로운 차르이며, 시민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험한 인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푸틴 총리가 대통령 재임 시절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던 것은 ‘강한 러시아’를 만들었다는 평가 덕분이었다. 2000년 대선 승리로 정식 대통령이 된 그는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까지 내몰렸던 러시아를 맡아 원유와 천연가스, 철광석 등 에너지산업을 국유화하면서 자원을 경제발전 무기로 활용해 큰 성공을 거뒀다.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출신답게 힘을 앞세워 과두재벌에 대한 대수술도 단행했다. 그 결과 푸틴 임기 중 러시아는 연평균 6.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대신 러시아는 민주주의 발전을 희생해야 했다. 푸틴은 선출직이던 주지사를 대통령 임명직으로 바꿨고, 군소정당 난립을 막는다며 정당등록 요건을 크게 강화해 의회에서 반대파 세력을 약화시켰다. 의회는 아직도 정부의 거수기 역할로 전락해있다. 2월3일 모스크바타임스에 따르면, 세르게이 미로노프 러시아 상원의장은 1월15일 TV에 출연해 푸틴 총리 정책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가 의장 사퇴압력까지 받았다. 이런 상황까지 이르자 3월13일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이 나서 “러시아 민주주의가 동력을 잃고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올 들어 러시아 대도시 곳곳에서는 푸틴 총리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권위주의 통치가 금방 끝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푸틴 총리는 3월29일 모스크바 지하철 폭탄 테러를 활용해 강압통치를 강화할 분위기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최근 “안보위기 상황은 푸틴 측이 모든 반정부시위를 비애국적 행위로 매도할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라고 분석했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추락했던 경제도 올해는 3.6%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됐다. 이에 따라 반대파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훈기자 tarant@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