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한일역사공동위원장인 조광 고려대 교수가 1일 오후 대학 연구실에서 인터뷰 도중 “잃어버린 ‘안중근 정신’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김연수기자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발굴되면 물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문과대학 연구실에서 만난 조광 교수는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화두(話頭)처럼 한마디를 던졌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의 중국 하얼빈(哈爾濱)역 거사가 일어난 지 101년이 되는 해이자 안 의사가 일제에 의해 형법상 살인죄로 죽음을 당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소수민족의 움직임에 민감한 중국 내에서도 안 의사에 대한 평가는 대단하다. “중일갑오전쟁(청일전쟁) 이후 20세기 초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하얼빈역에서 죽임으로써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두 나라 인민의 공동투쟁이 시작됐다”는 저우언라이(周恩來)의 말은 중국 현대사에 기록돼 있다.

저우의 평생 동지이자 부인인 덩잉차오(鄧潁超)는 젊은 시절 연극무대에서 안중근 역할을 했을 정도로 안 의사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안 의사는 사형 집행 전 유언을 통해 ‘조국이 해방되면 무덤을 옮겨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지난 3월26일 안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일을 전후해 정부와 많은 관련 단체들이 유해 송환문제를 들고 나올 정도로 이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관계와 근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조 교수의 말은 뜻밖이었다. 더구나 그는 며칠 전까지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역사공동위)의 한국측 위원장직을 수행한 인물 아니던가.

그런데…. 조 교수는 “안 의사 묘소를 찾아 그분의 유해를 송환한다고 하는데 이젠 좀 현실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시 한번 귀를 의심했다.

―유해를 찾는 것을 포기하자는 뜻으로도 들릴 수 있겠는데요.

“그동안 각종 감옥기록과 문헌들을 모두 뒤졌고 몇 차례나 국가보훈처 등 정부 차원에서 또는 중국과 협력해서, 혹은 남북한이 공동으로 묘소를 찾으려고 중국까지 갔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솔직히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유해를 찾는 게 좋은 일 아닌가요.

“찾으면 좋죠. 그런데 정확한 유해를 확인하는 방법이 막연합니다. 모계를 통해서 DNA를 분석하고 그것을 일치시키는 방법이 있지만 모계 계열로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단됩니다.”

조 교수는 점점 더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꺼내놨다. “과거 1950년대부터 북한에서 안 의사의 조카인 안우생과 김일성 등이 찾으려고 노력했고, 1980년대 이후에는 한국 정부가 앞장서서 찾으려고 했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100년이 흘렀습니다. 그 언저리 어디에서 뼈를 찾는다 해도 그것이 안 의사의 것인지 누구 건지 어떻게 알 방법도 없고….”

조 교수는 안 의사의 유해를 얻으려는 과정에서 우리가 잃은 것이 있다고 강조했다. 바로 ‘안중근 정신’이라는 것이다. “유해 발굴에만 온통 관심과 신경이 쏠려 있는 가운데 ‘안중근 정신’은 온데간데없어졌어요.” 조 교수는 심지어 일각에서는 안중근 의사를 팔아서 장사하는 ‘안중근 마케팅’을 벌이려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비판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얘기일까. “묘나 유해보다도 그분의 정신을 되살리는 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상당수의 독립운동가들은 전집(全集)이 나와 있는데 안 의사는 전집 하나 없습니다.” 정말 그렇다. 단재전집도 있고, 백암전집도 있고, 김좌진 장군에 대한 기록 모음도 있다. 한데 독립운동의 상징인 안중근전집은 없다.

잠시 산처럼 쌓인 자료를 뒤적이던 조 교수는 말을 이어갔다. “안중근과 관련한 전기(傳記)는 넘칩니다. 보세요. 여기 있네요. 아동문학이 173종, 전기문학이 16종…. 그런데 전집이 없어요. 이게 웬일입니까.”

조 교수는 자료가 없으니까 매일 같은 이야기만 우려먹고 되풀이하고 베껴 먹고 그런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들이 ‘적장을 향해 총을 쐈다는 것’ 외에 안중근에 대해 아는 사실이 뭐가 있느냐는 그의 말에서 노기마저 느껴졌다.

조 교수에 따르면 안 의사와 관계된 원사료가 굉장히 풍부하다. 직접 쓴 자료, 법정투쟁, 당시 신문 기록 등 매우 많다는 것이다. 신문 기록을 정리해 책을 내도 몇 권은 된다고 한다. 조 교수는 “그분이 쓴 것을 종합해서 25권 정도 (전집을 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작업을 진행시켜야 할 시점에 유해 찾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원래의 안중근 정신이 약해진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안중근 장군, 안중근 의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군으로 부르는 것은 타당치 않습니다. 안중근은 교육가이자 사상가이면서 철학자입니다. 여러 측면을 골고루 가진 인물입니다.”

―일각에서는 장군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높이는 게 아닙니다. 장군은 1년에도 몇 십명이 나옵니다. 의사는 쉽게 나오지 않죠. 의사가 당연합니다. 광복 후에 ‘중국에서 온 동(同)장군, 미국에서 온 개(皆)박사’라는 말이 유행한 일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너도나도 똑같이 장군이라고 하고, 미국에서 온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박사를 자청한 데서 나온 말입니다. 줄여서 ‘똥장군 개박사’라는 속어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안중근은 어떤 인물인가요.

“체 게바라보다도 매혹적인, 아주 매혹적인 인물입니다.”

―10만원권 지폐에 안중근 의사를 모셔야 한다고 하셨는데.

“남북한 공히 존중하는 위인이 많지 않습니다. 아마 이순신과 안중근 두 분 정도일 것입니다.”

―10만원권 지폐에 안 의사의 도안을 넣으면 한일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려는 일본인들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일본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런 것들이 신뢰로 쌓이고 상호 대화가 돼 역사문제를 풀어 가게 되는 겁니다.”

조 교수는 안중근 의사의 사상을 한마디로 ‘동양평화론’으로 압축했다. 예를 들어 한·중·일 ‘공동화폐 사용’을 주창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의 ‘블록경제론’이라는 것이다. “공동군대 창설도 꺼냈고, 공동교육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마누엘 칸트의 평화론보다 앞서 나간 것입니다. 칸트는 경제문제를 생각하지 못했지만 안 의사는 다 염두에 뒀습니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미완성이다. 사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조 교수는 안 의사의 법정투쟁 기록에서 그의 평화론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안 의사를 ‘동양평화 사상가’로 새롭게 부활시키는 게 그의 정신을 이어받고 그를 ‘불멸의 영혼’으로 남게 하는 길이라고 조 교수는 주장했다.

조 교수는 국가 간의 역사대화의 핵심은 ‘교과서 문제’라고 말했다. 국민교육을 담당하기 때문이리라. 어린 국민들, 미래의 주역들에게 제대로 된 교과서를 가르쳐야 역사가 바로 서는 것이니까.

그에 따르면 독일과 프랑스도 역사문제가 굉장한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하지만 공동교과서가 나왔습니다. 공동의 역사교과서라고 해서 모든 의견이 획일적으로 통일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의견이 병기된다는 것이죠. 독일은 전쟁의 책임을 인정한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공동교과서가 나오는 데는 70년이 걸렸습니다.”

일본은 전쟁의 책임에 대해 딱 부러지게 잘했다 잘못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 않다. 한·일 간에 공동 역사교과서는 물론, 대화 자체가 지난한 이유다. 조 교수는 “당장은 한국이 ‘우리 의견은 이런 것이다’라고 일본의 피교육자들이 알게 하고, 일본도 일본대로 ‘우리네 의견은 이것이다’라고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대사에서 한·일 간에 대표적으로 다른 건 어떤 거였습니까.

“많죠. 각종 조약의 국제법상 합법성 문제라든지, 강제동원 문제라든지, 군위안부 문제나 징용 문제 같은 거….”

―‘식민지 근대화론’은 어떻습니까.

“사실 그 문제가 가장 어렵습니다. 일본 학계가 주장하지만 우리 학계의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는 분명한 입장차가 있고, 또 그것을 확인했습니다.”

―역사공동위에서 그 논의가 있었습니까.

“경제문제에 대한 의견들이 서로 맞섰습니다. 그 가운데 그런 개념이 나왔습니다. 일본측에서 실제로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해서 식민지 지배가 조선 발전에 기여했다는 입장을 내놨죠.”

‘식민지 근대화론’. 일본은 식민화를 통해 조선을 근대화의 길로 이끌었다고 주장하고, 한국은 식민 지배는 곧 수탈구조였다고 반박한다. 이 대목에서 조 교수의 ‘식민지 근대화론’의 반박 논거를 들어보자.

“한반도의 산업화나 공업화는 모두 일본과 일본인을 위한 것입니다. 자본도, 이익도, 일본을 위한 것이었고 한반도와는 무관하게 전개됐습니다. 식민지 개발은 근대화를 낳기보다 착취구조를 유지 발전시켰습니다. ‘식민지론 = 수탈론’이라는 게 올바른 등식입니다.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은 합치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일본인 학자 중에서도 수탈론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하는 사람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 학자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조 교수의 비판은 계속됐다. “일본의 식민지 정책은 영국, 프랑스, 미국 같은 서양의 그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동일한 문명국가를 식민지화한 것은 일본밖에 없습니다.”

―동일 문명권의 식민지화는 어떤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까요.

“국가와 국민 상호 간의 수탈 착취라는 감정을 훨씬 심화시킵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반일감정이 대단히 커졌습니다. ‘박씨부인전’ 같은 걸 보세요.”

―국가 간 혐오감이 극대화됐다는 말씀이시군요.

“주권이 없는데 무슨 근대화입니까. 어불성설이죠.”

조 교수는 “일제가 조선은 근대화의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는 식으로 몰아갔는데 실은 철도만 해도 조선 내에서 자발적인 움직임이 넘쳤다”면서 “우리 민족을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민족으로 만들어 간 것이 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부산물”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다시 독일과 프랑스의 예를 들었다. 1차세계대전 이후 시작한 역사대화는 2차대전 이후 재론됐고, 계속적으로 대화를 통해 모두 합의가 안 되니 병기하는 쪽으로 했다는 설명이다. ‘프랑스의 경우는 프랑스의 주장이 주가 되고 독일의 주장은 각주로 다룹니다. 독일은 또 반대로 하는 거죠.” 조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경우 이제 역사대화가 만남을 가진 지 몇 년에 불과한 만큼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역사공동위에서 최근 한·일 간에 다시 논란이 됐던 ‘독도’ 문제는 아예 논의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상황에서 괜히 문제를 키워 국제분쟁이 되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많은 역사가들이 역사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카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고, 토인비는 ‘인류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했다. 조 교수에게 묻자 ‘사실과 해석의 결합’이라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했다. “좀 더 생활친화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역사는 ‘죽은 사람의 지혜를 빌리는 수단’입니다. 그러니까 되도록이면 현재의 지혜뿐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더 넓은 지혜를 가져야 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역사가 위축돼 가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미래가 있는 법인데 정부가 도대체 말을 안 듣는다”며 웃었다.

―역사공동위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조그만 문제라도 조금씩 의견 합치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올해는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 안중근 순국 100주년 등 특별한 해입니다. 정부에 바라는 점은.

“적어도 역사문제 해결이 전제되지 않고는 진정한 한·일 우호는 불가능합니다. 정부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역사공동위를 상설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후세에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중·고교 과정의 역사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인성교육, 민족적인 자부심, 국가 책임감, 모두 역사교육에서 나옵니다.”

조 교수는 젊은이들에게도 ‘일본인들과 만날 때 호오(好惡)를 앞세우지 말라’고 조언했다. 일본과 대화하고 국제무대에서 경쟁할 때 젊은이들이 설익은 민족대표 노릇을 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일본을 일본 그대로 객관적으로 봐야지 ‘러브’나 ‘헤이트’ 등의 감정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조 교수는 ‘근면성’과 ‘정직성’, ‘탐구력’을 꼽았다. 그는 “광복 이후 65년이 흘렀고 이젠 일본을 객관화시켜서 배울 점은 배우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허민 사회부장 minsk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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