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가 화두다. 기업 총수들이 잇따라 ‘10년 후’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10년 후와 100년 후를 전망하는 책들도 인기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1월 ‘CES 2010’에서 “삼성의 10년 후 준비는 아직 멀었다. 까딱 잘못하면 10년 전 구멍가게로 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의 트레이드마크인 ‘10년 프로젝트’를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삼성은 지난해 매출 136조500억원, 영업이익 10조9200억원을 기록,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100조-10조’ 클럽에 가입했다. 10년 전 매출 40조원일 때 세웠던 꿈을 훨씬 초과 달성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회장은 앞날이 더 걱정스러운가 보다.

삼성의 10년 프로젝트는 1983년 이병철 전 회장의 ‘도쿄 선언’이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산업에 뛰어들면서 10년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2년 세계 최초로 64메가바이트(MB) D램을 개발, 세계를 놀라게 했다. 2탄은 “아내와 자식만 빼놓고 다 바꿔라”는 이건희 전 회장의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꼽을 수 있다. 그의 발언은 10년 후 애니콜과 반도체 신화, 가전신화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성은 오늘날 세계 시장에서 11개 제품이 1위를 달리고 있다.

“5년, 10년 이후를 보는 긴 호흡으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 달라.”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10일 대전 LG화학 기술연구원에서 열린 ‘연구개발 성과 보고회’에서 이같이 당부했다. LG의 10년 프로젝트도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세계무대에 수출하기 시작한 LG전자의 태양전지와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는 미래를 먹여 살릴 ‘10년 공부’의 걸작품이기 때문이다.

‘10년 프로젝트’는 스포츠계에서도 화제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바로 그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동계올림픽 유치를 생각해 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동계종목에 투자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협회부터 맡아 발전시켜야 한다.” 1997년 이건희 전 회장은 박성인 빙상연맹 회장(밴쿠버동계올림픽 선수단장)에게 든든한 재정지원과 함께 제2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일명 ‘밴쿠버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발탁된 선수들이 바로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영웅인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이정수, 김연아 등이다. 그의 스포츠 10년 프로젝트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 당시 삼성 탁구단을 창설, 박 단장에게 맡기면서 3가지를 당부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갈 것, 10년을 내다보고 투자할 것, 경기인들에게 간섭하지 말 것 등이다. 그리고 10년 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한 유남규와 양영자 선수는 88서울올림픽에서 만리장성을 넘는 기적을 일궈냈다. 최근 박 단장이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비화다.

‘2020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현대경제연구원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달러 육박, 세계 랭킹 10위권에 올라설 것으로 전망했다. 빌 클린턴 미 행정부 시절 상무부 차관을 지낸 로버트 샤피로는 ‘2020 퓨처캐스트’에서 세계의 지형도를 바꿀 메가 트렌드로 ‘고령화·세계화·초강대국의 흥망’ 3가지를 꼽았다. 한국은 글로벌화의 이점을 살리면서 어떻게든 지속적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목을 끈다. 또 ‘민간의 CIA’라고 불리는 스트랫포의 설립자인 조지 프리드먼도 ‘100년 후’라는 저서에서 한국을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2030년 이전에 남북통일이 이뤄진 후 꾸준히 성장하면서 미국이 일본을 견제하는 데 균형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돌아가는 정치권을 보면 이러한 국운 융성기의 기회를 날려버릴까 걱정이다.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 등을 둘러싸고 3년째 정당간, 정파간 싸움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초·중학교 무상급식 문제 등 포퓰리즘 춤판까지 가세하는 모습은 할 말을 잃게 한다. 이들은 10여년 전 국가부도 사태를 잊은 지 오래고, 그리스의 교훈도 먼 나라 얘기다. 국민이라도 깨어 있어야 한다.

[[오창규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