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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밴쿠버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태릉선수촌에서는 출전선수들과 기자들이 만나는 ‘미디어데이’가 두 차례 열렸다. 당시 모태범(21·한국체대)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의 기대주는 모태범이 아닌 이규혁(32·서울시청)과 이강석(25·의정부시청)이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모태범은 외면한 채 두 선수에게만 집중적으로 질문을 퍼부었다.

실제로 모태범은 이번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500m종목에서 16일 금메달을 따낸 후 마련된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 여기자를 지목하며 “태릉선수촌에서 저 분만 내게 질문을 하셨다”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오늘이 내 생일이다. 하지만 부모님도 누나도 아무도 올림픽에 오지 말라고 해서 지금 혼자다. 내가 나한테 생애 최고의 생일 선물을 한 것 같아 너무 기분이 좋다”고 말해 숙연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렇게 모태범은 무명이었다. 7세 때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 모태범은 주니어 시절부터 꾸준히 실력을 다져 왔다. 2006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500m 1위, 1500m 2위, 3000m 3위에 오르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이듬해 같은 대회에서 500m 금메달을 차지하며 단거리 종목의 새 강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모태범은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한국의 에이스는 아니었다. 그는 항상 이규혁과 이강석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2008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월드컵 대회에 출전한 모태범은 그해 12월 월드컵 5차 대회 1000m 2차 레이스에서 5위에 오른 것이 최고의 성적이었다. 모태범은 이어 2009년 11월 시작한 2009~2010시즌 4번의 월드컵 시리즈에서 2차 대회 1000m 3위, 5차 대회 1000m 4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제 모태범은 ‘월드스타’다. 스피드스케이팅 500m는 육상으로 치면 100m 레이스에 해당된다. 그만큼 ‘스피드스케이팅의 꽃’으로 거론되는 종목이다. 모태범이 500m에서 금메달을 따내자 현지 언론의 관심은 곧바로 모태범의 ‘다관왕 달승’여부로 모아졌다.

이같은 기대는 모태범의 기록에 비춰볼 때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모태범의 주종목은 금메달을 따낸 500m가 아닌 1000m와 1500m다. 모태범은 500m 종목에서는 세계 14위에 불과해 그 누구도 금메달 후보로 생각지 못했지만 1000m에서는 지난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샤니 데이비스(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라 있다. 데이비스와의 기록차도 0.59초밖에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태범은 18일 오전 결국 또하나의 신화를 달성했다. 그러나 모태범에게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1일 열리는 남자1500m에서 다시 메달사냥에 나서는 것이다. 모태범의 1500m 기록은 세계 12위에 불과하지만 역시 세계 1위인 데이비스와의 차이가 1초81이다. 500m 같은 단거리 종목에서 1초의 차이는 어마어마하지만 1500m 정도면 당일 컨디션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밴쿠버 = 이경택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