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봄, 1년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된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박성인(72) 밴쿠버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장을 호출했다. 이 회장은 당시 삼성스포츠단장으로서 제일모직 전무를 거쳐, 삼성생명 부사장직을 맡고 있던 박 단장에게 “여름 스포츠의 기본은 육상이고, 겨울 스포츠의 기본은 빙상이다. 앞으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면 빙상 종목을 반드시 육성해야 한다”며 대한빙상경기연맹 쪽에 관심을 가질 것을 지시한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박 단장에게 “간섭하지 않고 전폭적으로 지원할테니, 절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 비인기 스포츠를 키우는 것은 마치 기업이 장기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것과 같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는 박 단장과 삼성그룹 측이 전한 한국빙상 신화의 뒷얘기다. 한국빙상 신화의 1등 공신으로 꼽히는 박 단장은 실제로 1997년 8월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장기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2010년 동계올림픽 쯤에선 빙상의 3대 종목인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에서 한국이 반드시 금메달을 획득해야 한다는 게 목표였다.

박 단장이 취임한 이후 삼성은 14년째 빙상경기연맹을 지원하고 있다. 그동안 삼성이 연맹에 지원한 투자액은 100억원을 상회하고 있다. 삼성이 자금을 지원하면서 빙상팀의 해외 전지 훈련이 본격화됐고, 일류 코치 영입도 가능해졌다는게 박 단장의 설명이다.

또한 박 단장은 국내 빙상 스포츠 저변 확대를 위해 각종 상금과 장학금을 내걸고 꿈나무 대회를 신설했다. 이렇게해서 발굴된 꿈나무들이 바로 1988~1990년생들인 스피드스케이팅의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과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쇼트트랙의 이정수 등이다.

김만용기자 my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