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산업에서도 소프트웨어(SW)가 가장 중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마이크로 소프트(MS)를 ‘SW 제국’으로 키워낸 빌 게이츠의 2007년 신년 화두다.

그즈음 또 하나의 정보기술(IT) 거장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07’에서 독자적인 운영체제(OS)를 탑재한 아이폰을 선보였다. 이때만 해도 아이폰의 충격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다음해 3세대(3G)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아이폰은 신드롬을 예고하기 시작했다. 현재 아이폰 사용국가는 한국과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일본, 대만, 러시아 등 80여개국에 달한다. 멀티터치와 키보드, 다양한 콘텐츠, 온라인상의 모바일 콘텐츠 직거래장터인 ‘앱스토어’는 소비자들을 아이폰 속으로 한없이 끌어들이고 있다.

10만건에 이르는 방대한 애플리케이션은 이미 새로운 거대 시장이다. 한국 아이폰 사용자들이 가입 첫달에 평균 1만5000원 정도의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은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애플은 이러한 열풍에 힘입어 지난해 4분기에만 매출 157억달러, 순이익 33억8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제2탄이다. 애플은 지난달 27일 손안의 PC인 아이패드라는 후속작을 내놓았다. 한마디로 ‘내 손 안의 PC’다.

IT업계는 이미 전쟁 상황이다. 살아남기 위해 제조업체와 SW사업자, 서비스 사업자 간의 경계선도 사라지고 있다. 구글이 자신만의 OS를 탑재한 안드로이드폰을 내놓으면서 더욱 뜨겁게 불붙고 있다. 애플의 태블릿PC에 맞서 구글이 델과, MS가 HP와 손잡은 것도 눈에 띈다. 삼성도 ‘안드로이드폰’으로 아이폰에 맞설 태세다. 이명박 정부가 4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발표한 SW산업 육성 계획도 같은 맥락이다. 2012년까지 1조원을 투자, SW 강국을 만들겠다는 계획부터 야심차다.

하지만 뒷북이다. 오늘날 한국이 IT리더에서 추격자 처지로 전락한 것은 정부와 서비스업체, 제조업체, SW업체 등 ‘4박자’가 따로 논 탓이다. 어느 순간부터 전전자교환기(TDX·1986년)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1995년) 개발을 통해 유선과 무선혁명을 이룩하고, 세계 최고의 인터넷 환경을 구축하던 기개가 보이지 않고 있다. IT산업은 돈만 풀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산업의 특성상 ‘규제’와 ‘당근’이 함께 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IT산업은 지식경제부, SW산업은 문화체육관광부, 규제는 방송통신위원회, 행정IT는 행정안전부로 나뉘어 있어 화음을 내기가 힘들다.

무선인터넷망 개방만 했어도 오늘날과 같이 답답한 상황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한국의 무선인터넷 네트워크는 세계 최고다. 아무리 좋은 고속도로가 있어도 그곳을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 안된다면 무용지물이다.

과실 따먹기에 도취해온 서비스 사업자들의 책임이 크다. 이들이 SW사업자들의 진입 기회를 사실상 막아왔다. 휴대전화 OS만 해도 한국이 선발주자였다. 2002년 ‘위피’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놓고도 이러한 폐쇄 구조 때문에 결국 사장시키고 말았다. 애플의 아이폰 OS와 노키아의 신비안, 구글의 안드로이드 등은 위피의 후배다. 시장 확대에 심취해온 제조업체의 책임 또한 무겁다. 삼성전자조차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5%도 안된다. 애니콜 스마트폰에 대한 외국의 평가는 ‘끔찍하다’다. SW 벤처들 역시 환경 탓만 할 때가 아니다. 이제 각종 지원제도가 시행되고 무선인터넷도 개방된다고 하니 해외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가야 한다. 아이폰 부품의 30%는 한국 업체들의 것이고, 앱스토어에서 판매 1위를 기록하는 것도 한국 게임이다.

한국은 무(無)에서 IT신화를 이룩한 국가다. 제2의 신화를 못 만들어낼 이유가 없다. 아직도 세계 최고의 IT테스트베드는 대한민국이다. 위기가 기회다. 4박자 화음을 기대한다. 본래 ‘내 손 안의 세상’은 대한민국의 자랑이지 않은가.

[[오창규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