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1970년대 중반 초여름 새벽. 뭔가 썩는 냄새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방문을 열고 넓은 들판을 보니 하얀 장판이 깔려 있는 듯했다. 모내기 때 뿌린 제초제로 미꾸라지가 죽은 것이다. 바로 옆 저수지 역시 민물장어와 미꾸라지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이러한 현상은 수년째 되풀이됐고, 어느새 미꾸라지와 민물장어는 ‘천연기념물’이 되고 말았다.

＃ 2. 지난해 봄. 화분에 심어놓은 대파에 진딧물이 생겨 밖에 내놓았다. 참새들이 달려들어 모두 잡아먹었다. 그러나 얼마 후 그 옆에 심은 고추에 진딧물이 발생, 헛농사가 되고 말았다. 그때만큼 진딧물의 천적인 무당벌레가 그리운 적도 없었다.

＃ 3. 지난해 12월초. ‘깍지무당벌레의 수입을 허용’이라는 기사는 정말 이색적이었다. 정부가 벌레 수입을 허용한 것부터 그렇고, 이 같은 일이 2002년 11월 칠레 이리응애 수입을 비롯, 여러 차례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친환경 농법을 위한 천적 수입이라고 한다.

＃ 4. 새해 벽두.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어왔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농장 알메리아에서는 최근 한국에서 수입한 천적을 이용, 파프리카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이곳 농산물은 상품성이 좋아 유럽 전역으로 수출된다. 하지만 몇년 전 이곳 농장은 비상이 걸렸다. 독일로 수출된 농산물에서 금지된 농약 성분이 검출, 수출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으로부터 가루깍지벌레류의 천적인 콜레마니진디벌을 수입, 위기를 극복했다.

최근 천적을 이용한 농법이 관심을 끌고 있다. 비닐하우스 안에 천적 한 통을 달아놓으면 진딧물 등 병충해가 감쪽같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천적농법의 원조는 네덜란드와 덴마크다. 이들 나라 농산물이 유럽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요한 사실은 대한민국이 천적농법 선진국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원규 세실㈜ 회장의 창조적인 도전정신 덕분이다. 지난해 천적 벌레만 팔아 200억원 가까이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명부터 독특하다. 무당벌레 500g 4만원, 콜레마니진디벌 100㎖ 2만원, 어비진디벌 100㎖ 3만원, 진디혹파리 100㎖ 3만원, 뱅커플랜트 1팟 2만원, 진디면충좀벌 100㎖ 3만원, 싸리진디벌 100㎖ 2만원, 호랑풀잠자리 500g 4만원, 진디뱅커플랜트 1팟 2만원, 지중해이리응애 1000㎖ 4만원, 황온좀벌 100㎖ 7만5000원, 담배가루이좀벌 100㎖ 7만5000원……식이다.

이 회장의 천적벌레사업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본래 그는 목재 및 펄프 관련 무역업을 했다. 매년 3억달러 규모로 신용장을 직접 열어 목재 관련 무역업을 경영하던 중 외환위기로 어려움에 직면했다. 환차손을 감당할 수 없어 회사문을 닫고 방황했다. 그러던 중 네덜란드와 덴마크에서 새로운 사업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특히 네덜란드의 1991 ~ 2000년 ‘작물보호 장기계획’이라는 10년짜리 마스터플랜 친환경농법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귀국 후 시작한 천적사업은 만만치 않았다. 2004년 어렵사리 15종의 천적을 생산, 국내 시설 농가 및 농업기술센터 등에 보급해 보았다. 그러나 반응은 농약을 치면 될 걸 뭘 힘들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천적의 대량생산도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최근 그는 29종의 천적을 개발, 이 분야 세계 3위 기업으로 등극했다. 제품 상당수가 유럽과 일본 등에 수출되고 있다. 딸기와 토마토, 파프리카 등 천적농사를 짓는 국내 농장도 늘고 있다.

최근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특히 250만개 벌통을 가진 미국에서는 몇년 전부터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 비상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농약살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인과응보다. 식물 75%는 꿀벌에 의해 수정된다는 점에서 꿀벌 실종→식물 멸종→생태계 파괴→인류 멸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박사는 “만약 꿀벌이 사라지면 4년 내에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했다. 먹이사슬 붕괴는 소리 없는 지진이다. 생태계는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이다. 천적농법이 주목받아야 할 이유다.

[[오창규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