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전북현대를 15년 만에 K-리그 챔피언으로 만들어 놓은 최강희(50) 감독은 올해 한꺼번에 많은 별명을 얻게 됐다. 물론 팀을 우승팀으로 변모시켰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우선 2006년 전북현대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정상으로 이끌자 언론에서 그에게 ‘강희대제’라는 칭호를 붙여줬다. 강희대제는 중국 청나라 때의 불안한 정국을 안정시킨 황제였다. 동명의 최 감독이 ‘황제’와 같은 카리스마로 팀을 재건했다는 평가다. 최 감독의 훈련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훈련에서 120%를 해야 실전에서 100%가 나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최 감독이 2009 프로축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한 후 “리그 최종전이 끝나고도 한 달간의 훈련을 잘 견뎌준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다.

올시즌 전북현대를 우승으로 이끈 주요 선수들의 면면을 보고 붙여진 별명이 프로야구의 김인식 감독으로 대표되는 ‘재활공장장’이라는 별명이다.

지난 1월 최 감독이 성남일화에서 방출된 이동국과 김상식을 데려왔을 때만 해도 그 결정을 지지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최 감독은 “부진한 원인을 제거하고 장점을 키워주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며 그들의 재기를 의심하지 않았다.

최 감독은 두 선수와 긴 대화를 나눈 후 이동국에게는 “부진하더라도 끝까지 믿겠다”고 했고, 김상식에게는 주장을 맡겼다.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듯 이동국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득점왕(20골)에 올랐고 김상식은 전북현대 팀을 끈끈한 조직력으로 묶어냈다.

이철근 전북현대 단장은 “다른 팀에서 외면하는 선수들을 영입할 땐 몇 번이나 말리고 싶었는데, 그 선수들이 이렇게 변한 걸 보니 최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다”고 말할 정도다. 최 감독은 “팀에서 비싼 선수들을 안 사주니까 자연스럽게 재활공장장이 된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재활공장장’이라는 별명에 대해 자신은 그런 면에서 탁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선수를 영입할 때는 그 선수와 꼭 식사를 하든지 대화를 한다. 그 선수가 처한 환경과 성격, 장점 등을 보고 영입한다. 나쁜 점은 서로 노력하면 고칠 수 있다”고 비결(?)을 밝혔다. 그는 또 “함께 노력하고 나의 진심이 선수에게 전달되면 선수들도 움직인다”고 덧붙였다.

최 감독은 한때 ‘스타크래프트’ 마니아였다고 한다. 수원 코치 시절 컴퓨터 앞에 앉으면 날이 새는 것도 몰랐을 정도라고 한다. 그는 “학창시절에 컴퓨터 게임을 알았다면 아마도 수차례 가출했을 거다”고 말한다. 그는 인터넷과도 친근하다. 싸이월드 홈페이지를 개설해 방명록에 글을 남기는 팬들에게 하나하나 답글을 달아주며 소통을 시도했다. 입소문이 퍼져 수많은 팬이 홈페이지에 몰려 답글을 달다보면 어느새 새벽이 되는 일도 잦았다. 그러나 이를 통해 팬들을 경기장으로 끌어모으는 동시에 젊은 세대들의 사고방식도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다음은 최 감독 스스로 ‘가장 좋은 별명’이라고 말한 ‘봉동 이장님’이다. 전북 완주군 봉동은 전북현대축구단 선수 숙소가 있는 동네다. 그는 스스로를 ‘봉동 이장’이라 부르며 구단 식구들을 챙긴다. 최 감독은 지난 11월1일 경남FC와의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와이셔츠 안에 부상으로 뛰지 못하게 된 김형범의 유니폼을 받쳐 입었다. 그는 경기 후 “너도 우리와 함께 뛴 거다”고 말했다. 김형범은 눈물을 흘렸다. 최 감독은 또 지난 7월 이동국의 국가대표 선발 논쟁 때는 직접 나서서 “이동국은 달라졌다. 편견을 버려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일단 자신이 품은 선수들에 대한 ‘무한 신뢰’인 것이다. 마을 이장처럼 푸근한 모습은 구단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손지훈 전북현대 홍보팀장은 “평소 직원들과 함께 축구도 하고 식사도 챙겨주신다. 농담도 잘해 감독님과 허물이 없다”고 말했다. 구단과 감독이 가까운 만큼 성적이 좋을 수밖에 없다.

전북현대의 창단 첫 K-리그 우승은 이렇듯 ‘조용한 카리스마’ 최강희 감독의 힘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4년 울산 현대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한 최 감독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같은 해 베이징 아시안게임 등에서 대표 선수로도 뛰었다. 1992년 현역에서 물러난 최 감독은 이듬해 독일로 날아가 분데스리가 레버쿠젠과 쾰른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수업을 쌓았다.

1995년 수원 삼성에 트레이너로 입단해 1998년부터 코치로 승격됐고, 2000~2001시즌 아시안클럽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른 뒤 수원삼성을 떠났다. 최 감독은 수원에서 코치로 활동하면서도 2000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뉴캐슬과 2001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데포르티보 등에서 선진 축구를 경험했고, 2002년에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연수를 계속하는 등 선진 축구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선진 축구를 접하면서 최 감독은 “군림하는 지도자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선수와 일대일 대화로 신뢰를 쌓았고, 개개인의 장점을 찾아 극대화하는 것이 감독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지도자보다는 동료로서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전북현대를 ‘명문 클럽’으로 만들어 놓은 그는 드디어 모두가 인정하는 한국 프로축구 최고의 감독 자리에 올랐다. 최 감독은 지난 22일 ‘2009 쏘나타 K-리그 대상’ 감독상 기자단 투표에서 110표 중 80표를 얻어 30표에 그친 포항의 파리아스 감독을 제치고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2005년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처음 받은 상이다. 최 감독은 “지난해 시상식을 객석에서 보며 과연 내가 저 자리에 설수 있을까, 우리 팀이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1년 만에 현실이 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해 준 덕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평소 인터뷰 때마다 재치 있는 멘트로 취재진을 즐겁게 해 주기로 유명한 최 감독은 이날도 “(경쟁자인) 파리아스 감독님께도 감사한다. 왜냐면 적절한 시기에 (팀을) 떠나줬기 때문이다”고 말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최 감독은 올시즌 우승 후 가장 먼저 생각나고 고마운 사람으로 동갑내기 아내 이명성(50)씨를 꼽았다. 그는 “내가 B형 남자로 성격이 굉장히 예민하고 꼼꼼하다. 평소에는 잘 안 싸우지만 한번 싸우면 오래 간다. 그런데 아내는 정반대다. 충청도 출신에 O형인데 싸우고 나서 5분 뒤면 제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린다. 늘 만만디고…. 그런데 오래 살다보니 지금은 성격이 똑같아졌다”며 아내 덕에 둥글둥글한 사람이 됐다고 자랑한다. 그는 2001년 수원 코치에서 물러나 충격에 빠져 있을 때 아내의 권유로 스페인으로 갔다고 한다.

“3개월 동안 축구장 근처에도 안 가고 집 안에만 머물렀다. ‘내가 한국에서 다시 지도자를 할 수 있을까’하고 절망하던 때 아내가 ‘당신을 믿어요. 큰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거예요’라며 묵묵히 힘을 불어넣어 줬다. 나도 나 자신을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아내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는 ‘고졸 선수로 프로생활을 시작하고 국가대표에도 뒤늦게 발탁돼 선수 시절부터 대기만성형이라는 말이 있다’는 얘기에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나는 굉장히 행운아이고 행복한 사람이다.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다. 코치와 선수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믿고 따라줘 K-리그도 제패했다.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연말에 전북현대 팀을 3년 더 맡기로 계약했다. 그는 “올해는 K-리그에서 우승했으니 내년에는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우승에 도전해보겠다. 2006년에는 얼떨결에 우승했지만 지금은 대회 규모도 커졌고 선수층도 두꺼워졌으니 한번 해볼 만하다”고 2010시즌 각오를 밝혔다.

선수시절 늦깎이 대표팀 발탁, 은퇴 후 오랜 코치 생활,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먼 지방구단에서 시작한 감독생활. 화려함보다는 털털함과 소박함에 늘 가까웠던 그는 영광을 품에 안기보다 주변과 나누는 것에 더 익숙해보였다.

kj59@munhwa.com

최강희 감독은…

▲1959년 서울 출생. ▲1978년 우신고 ▲1980년 육군 충의팀 ▲1984~1992년 울산현대축구단 선수 ▲1995~1997년 수원삼성 트레이너 ▲1998~2001년 수원삼성 코치 ▲2002~2004년 아시안게임 대표팀 코치, 국가대표팀 코치 ▲2005년 7월~현재 전북현대축구단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