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문화 선진화만 제대로 이뤄지면 한국 자동차 산업은 수년 내에 세계 최고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10월8일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은 전기자동차 개발보다 중요한 것이 노사 문제라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노사 선진화 없이 선진 한국도 없다. 최근 ‘한국노총 2중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모습을 보면 갑갑하다. 그들에게는 국민도 기업도 안중에 없다. 오로지 선거만 어른거리는가 보다. 지난 4일 복수노조 시행을 2년6개월 유예하고, 노조전임자 불급(不給) 문제를 타임오프제라는 ‘꼼수’로 노·사·정 타협을 도출해낸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개정 법령을 다듬는 과정에서 ‘덧칠’까지 하고 있다. 타임오프제 합의안인 ‘노사 교섭·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외에 슬그머니 ‘통상적인 노조관리 업무’를 끼워넣은 것이다.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한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라는 포장부터 안쓰럽다.

우선 ‘통상적인 노조관리 업무’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 ‘단체협약에서 정하거나 사용자 동의가 있는 경우’라는 단서 조항도 구색에 불과하다. 이 조항 때문에 노측과 사측은 노조전임자 수와 타임오프 범위를 놓고 1년 내내 싸울 수밖에 없다. 한국노총은 한술 더 떠 아예 관리를 빼 ‘통상적 노조업무’로 고치자고 주장한다. 조합원대회 등 각종 회합과 행사는 물론 합법이든 불법이든 파업 준비 활동까지도 노조 업무로 인정받으려는 속셈이다. 이미 ‘통상적인 노조관리업무’로도 가능하지만 좀더 확실히 못박자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현행 무노동 무임금 원칙마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현재 전임자를 두지 않고 있는 중소기업들이다. 전임자를 두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4일 경제 5단체의 항의 방문을 받고, “노·사·정 합의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후안무치(厚顔無恥)다.

한발 더 나아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라는 전제조건이 있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대통령령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준비기간을 내세워 타임오프제 실시 시기를 내년 7월1일로 잡은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내년 6·2 지방선거를 의식한 것이다. 더구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만들어질 대통령령에 무엇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대한민국 1인당 국민소득은 14년째 마(魔)의 1만달러대에 머물러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에 있다. 세계은행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용유연성 조사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181개국 중 152위다. 노동 유연성 및 안정성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비교 대상 22개국 중 18위다. 1998년 11위였으나 2007년까지 10년간 계속 하락했고, 지금은 12년으로 기록경신 중이다. 이와 궤를 같이해 한때 11위까지 올라갔던 한국경제는 16위까지 밀려났다.

회사가 노조전임자는 물론 상급단체 파견 전임자에게까지 임금을 지원하고, 결국 정치인으로 키우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노조전임자→상급단체 파견→국회의원’의 노동문화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한국은 노조원 대비 전임자 수 역시 세계 최고다.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이 500~1500명당 1명이지만 한국은 150명당 1명이다. 여기에 사실상 노조전임자 행세를 하는 대의원과 차량과 유류비 지원·노무관리비 등을 고려하면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노조 전임자들이 지난해 회사에서 받아간 임금 총액은 무려 4288억원에 달한다. ‘한국=노조 천국’으로 비칠 만하다.

한나라당이 끝내 한국노총의 2중대로 노조법 개악(改惡)에 앞장선다면 달리 방법이 없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부터 냉엄한 심판을 할 수밖에…. 교사(1999년)에 이어 공무원(2004년)까지 노조 활동을 하는 세상으로 만든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그러한 우(愚)를 범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오창규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