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골퍼에게 ‘첫 승’은 어떤 의미일까. 아시아 남자 선수 처음으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대회(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양용은(37) 프로는 ‘첫 승’에 대해 “‘희망’이고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국내 프로 무대에서 43승으로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최상호(54) 프로는 “우승을 하느냐，못 하느냐가 프로선수로서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첫 승의 의미를 평가했다.

2006년 프로 전향후 3년, 2003년 US여자아마추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것을 기준으로 삼자면 무려 6년만에 프로무대 ‘첫 승’을 일궈낸 미셸 위(한국명 위성미·20·나이키골프)가 꼭 그런 것 같다. 재미교포 미셸 위는 지난 16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생애 처음 우승한 뒤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와! 우승하는 것이 이렇게 기쁠지 상상하지 못했다. 이젠 내 삶이 더 나아질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프로선수로서의 ‘인생 전환’과 ‘희망과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미셸 위와의 전화 인터뷰는 그의 아버지 위병욱(49)씨와의 연결로 잠깐잠깐씩 몇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프로 데뷔 ‘첫 승’의 감격을 뒤로하고 LPGA시즌 마지막 대회인 LPGA투어 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위해 미국 텍사스주로 이동한 뒤 가진 첫 통화에서 미셸 위는 ‘첫 승의 기쁨이 남달랐을 것 같다’는 인사말에 “그렇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느냐”면서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도 말했듯이 프로 무대에서의 우승이 이렇게 큰 기쁨이고 행복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손목을 다쳤을 때 사실 많이 좌절했다. 정말 힘들었다. 물론 그때 나 자신과 내 몸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시 힘겨웠던 일들을 이겨낸 내가 자랑스럽다”면서 “이번 우승으로 더 열심히 훈련하고 더 많이 이길 수 있는 동기가 마련됐다”고 다시 ‘자신감’과 ‘희망’을 얘기했다.

그의 말대로 2006년 ‘프로 전향’을 선언한 이후 미셸 위는 몸과 마음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2003년 US여자아마추어챔피언십 우승으로 세계 골프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미셸 위는 ‘여자 타이거 우즈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프로에서도 우승은 당연한 것이고 언제 얼마나 빨리 이루느냐가 관심이었다. 하지만 잘 알려졌다시피 미셸 위에게 프로 무대는 가시밭길이었다.

미셸 위는 한동안 LPGA 투어 정규 회원 가입을 미루고 남자대회에 출전하는 등 화제를 뿌렸지만 부상까지 겹치면서 제대로 성적을 내지 못해 ‘무모한 도전’이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2008년 12월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해 2009년 시즌 LPGA 투어 정식 멤버가 된 미셸 위는 시즌 개막전인 SBS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지만 시즌이 끝나갈 때까지 우승 문턱을 넘지 못했다. 더욱이 2007년 가을에는 미국의 명문 스탠퍼드대에 입학, 학업과 투어 생활을 병행했다. 그러다 보니 ‘일찍 핀 미셸 위는 일찍이 끝났다’는 회의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1000만달러의 소녀’에서 ‘미운 오리 새끼’‘양치기 소녀(다음 대회에서는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던 것)’로 전락한 것.

그런 미셸 위였기에 ‘첫 승’에 대한 갈망과 부담은 남달랐다. 그는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 직후 ESPN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등 뒤에 달라붙은 원숭이를 떼어버린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최종라운드에서 받은 심리적 압박감에 대해 “옛날에는 속으로 ‘그래 난 할 수 있어. 얼마나 오래 우승을 기다렸니’라고 스스로 얘기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올해 치른 다른 대회처럼 아무 생각없이 경기장에 갔고 승부를 즐기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우승으로 긍정의 힘을 알게 됐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행복할 때 경기가 잘 풀리고, 행복하니까 더욱 행복하게 되더라. 이번 우승으로 나 자신이 새롭게 만들어진 느낌이다”고 말했다.

‘그러면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에 미셸 위는 “이번 대회에서처럼 우승했을 때는 물론 가족,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가장 행복하다. 대학생활도 정말 행복하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게 균형이 이뤄졌을 때다. 앞으로 더 많은 대회에서 우승하고, 학교생활도 더욱 충실히 할 것이다”고 답했다. 미셸 위는 “대회에서 우승한 날 밤에는 친한 동료들과 함께 맥주파티를 열어 오랜만에 수다를 떨었다”고 말했다.

대회 출전을 위해 2주 동안 수업을 빠지게 된 미셸 위는 인터넷을 통해 강의를 듣고 과제물도 제출하고 있다. 그의 전공은 커뮤니케이션.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다 보니 동기들보다 졸업은 2년 정도 늦어질 것 같다고 한다. 미셸 위는 골프 훈련을 위해 강의 스케줄도 오전 이른 시간과 오후 늦은 시간으로 조정했다. 하루 5시간 정도 연습 라운드, 샷 연습, 웨이트트레이닝 등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골프 전문가들은 미셸 위가 예전에 비해 기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달라졌다고 평한다. 우선 위병욱씨는 “미셸이 그동안 우승 문턱에서 여러 차례 무너지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요령을 터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쇼트게임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는 말에 위씨는 “1970년대 PGA무대에서 ‘퍼팅의 대가’로 불렸던 데이브 스톡턴(68)에게 받은 원 포인트 레슨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스톡턴은 미셸 위의 우승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퍼팅은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퍼팅은 마인드가 지배한다”면서 “미셸 위의 예전 퍼팅은 너무 기계적이었다. 이 점을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미셸 위의 스윙도 완전히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백스윙의 크기를 줄였다는 것. 어드레스에서 백스윙에 이르는 시간이 짧아진 만큼 다운스윙 때 정확한 임팩트가 가능해졌다. 미셸 위의 이번 대회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는 281.75야드. 출전 선수 가운데 1위다.

아버지 위씨는 “무엇보다 미셸이 우승에 집착하기보다 이제는 골프를 알고 즐기는 것 같다. 미셸의 할아버지도 살아계셨을 때 항상 말해 왔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셸 위의 할아버지는 서울대 명예교수였던 고 위상규 박사다. 한국 최초의 항공공학박사로 한국항공우주학회를 설립하는 등 이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해오다 지난해 12월 지병인 암으로 숨졌다. 위씨는 “아버님은 미셸이 골프를 시작할 때, 무엇보다 공부를 우선해 조국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어야 하며, 골프는 건강과 취미로 하라고 당부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셸 위가 달라진 것은 ‘정신력’이었음을 그와의 두 번째 통화에서 알 수 있었다. LPGA 투어 챔피언십 프로암이 열렸던 19일 오전에 연결된 위씨는 미셸 위의 부상을 걱정했다. 그러나 미셸 위는 ‘대회 출전이 가능하겠느냐’는 걱정에 “의사가 지시한 진통제를 먹었다. 이 대회는 투어 챔피언십이라는 중요한 대회이기 때문에 꼭 뛰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 기권했으나 달라진 강한 의지와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골프전문지 골프월드의 칼럼니스트 론 시락은 미셸 위의 ‘첫 승’직후 인터넷판에 “미셸 위의 이번 우승은 위대한 선수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신적인 면의 성숙함과 함께 기량 면에서도 완숙의 경지를 향해 가고 있는 미셸 위가 LPGA 첫 승을 발판으로 어디까지 뻗어 나가게 될지 전 세계 골프팬들이 다시 주목하고 있다.

체육부장 kj59@munhwa.com

미셸 위는…

▲1989년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출생 ▲아버지 위병욱(49)씨와 어머니 서현경(43)씨 사이의 외동딸 ▲한국 이름 위성미(魏聖美) ▲2003년 US여자아마추어퍼블릭링크스챔피언십 최연소 우승 ▲2005년 SBS오픈 준우승, LPGA챔피언십 준우승,에비앙마스터스 준우승, US아마추어퍼블릭링크스챔피언십(남자대회) 8강 ▲2006년 프로 데뷔, 에비앙마스터스 준우승 ▲2007년 미국 호놀룰루 푸나호우고 졸업(버락 오바마 대통령 졸업), 스탠퍼드대 2학년 재학(타이거 우즈 졸업) ▲2009년 SBS오픈 준우승, 나비스타 LPGA클래식 준우승, LPGA투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우승